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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역대 최고의 레프트 백 파올로 말디니 [Paolo Mald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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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올로 말디니 (Paolo Cesare Maldini)

출생 1968년 6월 26일 (이탈리아)

신체 186cm, 85kg (오른발)

커리어 1984년 ~ 2009년 AC 밀란

경력 세리에 A 우승 7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수페르코파 우승 5회

챔피언스리그 우승 5회

UEFA 슈퍼컵 우승 4회

인터컨티넨탈 컵 우승 2회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1회

피파 공로 훈장 (2008)

챔피언스리그 공로상 (2009)

 

 

현대 축구에서의 풀백

과거의 축구의 중심은 중앙이었습니다. 중앙

에서 공격을 전개하고 가장 화려한 플레이가

펼쳐졌지요. 그 중심엔 '트레콰르티스타'라

불리우는 공격형 미드필더가 있었죠. 때문에

과거에는 마라도나, 플라티니 같은 공격형

미드필더 출신 선수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축구가 현대화되고 수비 시스템 점차 발전

하면서 중원의 압박은 더욱 심해졌고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쓰루 패싱, 드리블 돌파가 힘들어

졌어요. 때문에 현대 축구에서 리켈메, 베론

같은 선수들이 줄어들고, 피를로 역시 2선

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압박이

적은 처진 미드필더로 출전하여 빛을 보게

되었지요.

 

이를 통해 우리는 '측면'지역이 현대 축구의

새로운 중심이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원

싸움이 힘들어지면 공격수들은 상대적으로

공간이 비어있는 측면으로 공을 돌리고 윙어

들은 보다 수월하게 돌파하여 타겟맨에게 

공을 전달하는 크로스 플레이를 할수도 있고

돌파력이 있는 소위 '크랙'형 인사이드 포워드

의 경우 순식간에 중앙으로 깍아 들어오면서

슈팅 찬스를 노릴 수도 있고 여의치 않으면

반대쪽 사이드로 롱볼 패스를 하여 공격

전환을 하는 등 측면은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었습니다.

 

파올로 말디니의 볼 위닝 능력

 

물론 과거에도 프랜시스코 헨토, 가린샤같은

위대한 윙어는 존재하였지만 측면이 현대 축구의

핫 존으로 자리잡게되자 점차 풀백의 중요성

아주 강조되기 시작했죠. 과거의 풀백의 존재는

단순히 측면을 윙어로부터 지키는 수비수의 롤

만 부여되었다면 현대의 풀백/윙백의 경우 왕성한

체력을 바탕으로 쉴세없이 수비와 공격을 오가는

오버랩핑, 크로스 능력, 스피드 그리고 수비전환

시 상대의 윙어를 막아내는 수비력까지 필요한

공수겸장의 선수가 되어야 하고, 이러한 윙백의

등장으로 인하여 현대축구는 현시점 가장 인기

있는 변형 수비 포메이션 특히 3백의 인기에 한

몫을 톡톡히하게 됩니다.

 

애초에 수요가 많은 포지션이 아니기 때문에 윙백/

풀백의 위치에서의 유망주는 말그대로 구단들이

모셔올 정도에 이르렀지요. 즉, 과거에는 앞서 말한

화려한 플레이메이커가 가장 비싸고 희귀한 선수

였다면 이제는 수준급 윙백/풀백이 가장 귀한 선수

가 되었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오늘 소개할 선수는

그 귀하다는 왼쪽 풀백 역사에 정점에 위치한 선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레프트 백이자 AC밀란과 이탈

리아의 '캡틴' 파올로 말디니 입니다.

 

뛰어난 판단력

 

리베로의 아들

파올로는 1968년 이탈리아에서 체사레 말디니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체사레는 1950~60년대 AC

밀란의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며, 클럽에 역사상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안겨준 전설적인 수비수로

활동했습니다. 물론 축구계의 스타 플레이어의 

아들로 태어나 축구를 접하기 쉬운 장점도 있겠

으나 전설적인 선수의 아들로 태어나 축구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일이 아닙니다.

 

축구만 놓고보면 대성한 아버지를 뛰어넘는 사례가

정말 흔치 않을뿐더러 아버지는 주변 시선을 의식

하여 깊게 개입하기도 힘들며 아이 본인은 가족을

비롯한 코치진들의 기대 심리에 부응하기 위하여

아이의 부담감은 더 커지기 마련입니다. 더구나

같은 포지션이라면 자연히 비교되어 부담감은

배가 되겠지요.

 

말이 필요없는 수비력

 

파올로 말디니가 청소년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

되었을때는 아버지 체사레가 대표팀 감독이었기

때문에 파올로를 잘몰랐던 원로들은 축구계의 부정

발탁을 염려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후술 하겠

지만 경기장에서 본 어린 말디니는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보석이었기 떄문에 논란은 쉽게 종식

되었지요. 하지만 부자지간이 감독과 선수였기 

때문에 두사람은 주변을 의식하며 힘든 대표팀

생활을 이어갔다고합니다.

 

반면 파올로 말디니는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뛰던

AC 밀란의 유스팀에서 활약하고 있었는데요. 보통

선수들은 선호하는 포지션과 위치가 있고 그 위치

에서 빛나기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린 말디니는 팀이 내게 원하는 자리가 바로 내가

뛰어야할 포지션이라 생각하며 약점을 지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손웅정 감독의 훈련법으로

유명해진 양발 훈련이었지요. 말디니는 본래 오른

손잡이로 오른발을 주로 사용하는 라이트백이었죠.

 

하지만 당시 AC밀란의 라이트백은 훗날 수석코치

로 유명해진 레전드 '마우로 티소티'가 위치하였기

때문에 밀란 입장에서는 든든했기 때문에 말디니

는 출전도 보장되고 AC 밀란의 치부였던 레프트 백

으로 데뷔하기 위하여 꾸준히 왼발을 연습하였고

프리킥도 왼발로 차는 수준까지 양발의 황금 밸런싱

을 유지하는데 성공합니다. 축구에서 양발잡이의 

이점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희열을 느꼈

다는 발롱도르 수상자 '네드베드'의 말처럼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속에서 양발로 정확하게 볼을 컨트롤

할 수 있고 찰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최고의 옵션

이기 때문이지요.

 

호나우지뉴도 극찬한 말디니의 볼 컨트롤.

 

밀란 제너레이션 1기

그렇게 프로를 위해 착실히 훈련하던 캡틴 말디니의

프로생활은 그야말로 드라마와 같은데요. AC 밀란

 승부조작으로 인해 1982년 연달아 세리에B로

강등 됩니다. 그리고 세리에 A로 복귀한 1984년

시점 팀의 재정 상태는 그야말로 최악이었죠. 그때

신흥 언론 재벌로 부상하던 실비오 베를르수코니가

팀을 인수하여 팀의 재정난 해소는 물론 선수의 영입

도 가능하게 될 정도로 AC 밀란의 재정난은 해소

됩니다.

 

그리고 뒤이어 AC밀란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 칭송

받는 파올로 말디니가 1군에 처음 이름을 올리는

겹경사를 맞이합니다. 이듬해인 1985년 1월 말디니

 교체 출전으로 세리에 A에서 프로 데뷔를 하게

되고 곧바로 17살의 나이에 AC밀란이라는 명문

클럽의 주전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1987년엔

개인적으로 '말-네-스-카'를 뛰어넘는 역대 최고

수비 라인이라 생각하는 '티소티-코스타쿠르타-

바레시-말디니' 라인이 완성됩니다.

 

말디니의 상징과 같은 정교한 태클

 

이렇게 완벽한 수비진의 전방엔 '오렌지 3총사' 로 

불리우는 '반 바스텐-레이카르트-루트 굴리트' 라인

이 장착되었고, 감독으로는 압박축구를 창시하여 

마라도나의 독주를 막은 전설적인 감독 '아리고

사키' 포진하는 무시무시한 전력이 완성됩니다.

'밀란 제네레이션' 1기의 시작이었지요. 밀란 제네

레이션 1기는 당시 세계 최고의 리그였던 세리에 A

스쿠테토를 무패로 획득하였으며 유로피언컵 연패

는 물론 챔피언스리그까지 우승하며 체사레 말디니

에 이어 부자가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드는 초유

의 기록도 달성하게 됩니다.

 

그러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클럽팀으로 불리는

위대한 밀란 제너레이션도 영원하지 못했습니다.

선수들의 노쇠화가 시작되며 기량이 조금씩 쳐지기

시작했고 무릎 부상이 고질적으로 반복되자 이른

나이에 은퇴를 선언한 반 바스텐을 비롯하여 바레시,

티소티 등 주축 선수들이 은퇴하고, 다른 선수들의

이적 등과 맞물려 1995/1996  시즌을 끝으로 밀란

제네레이션1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말디니의 낮은 카드 수집률의 이유 '정교한 태클'

 

빛과 그림자

스포츠에서 찬란하게 빛이난 팀은 그 빛을 잃으면 

다시 빛을 발할때 까지 그림자로 남는 경향이 있습

니다. 2002년 월드컵에서 우승한 후 월드컵 결승

에도 가보지 못한 브라질, 08유로/10월드컵 챔피언

이었던 스페인, 지난 유로에서 우승하고 월드컵에

나오지도 못한 이탈리아 처럼요. 물론 브라질과

이태리의 경우 여전히 강팀이긴 하고 국대와 클럽

팀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비교는 불가능하겠지만

AC 밀란에겐 암흑기 찾아옵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구단은 영광의 시대에 계속

도취되어 축구계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

의 전술 혹은 방식대로만 운영을 강요하여 감독들만

줄줄이 경질되는 등 최악의 상황만 지속되고 있었죠.

하지만 말디니는 꾸준히 성장하며 그 자리를 지켰고

변화와 개혁을 하려는 감독을 홀로 지지하며 밀란의

부활을 기다렸죠. 그리고 해가 거듭될 수론 그는

타고 피지컬에 수비력, 위치선정, 빌드업, 수비

라인 운용까지 완벽한 선수로 발돋움 합니다.

 

요즘들어 화려한 공격력을 지닌 풀백들이 화재가

되곤 하죠. 다니 알베스, 마르셀루 같은 브라질 출신

풀백들이 그러했죠. 하지만 이들의 단점은 공격에

능력치가 조금은 쏠렸기 때문에 수비력엔 조금은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의 말디니

는 그야말로 난공불략이었습니다. 현역 최강 수비수

인 라모스, 키엘리니 그리고 네스타까지 존경하는

수준의 극강의 수비력이 뒷받침 되었을뿐만 아니라

말디니는 최고의 드리블러 호나우지뉴가 깜짤 놀랄

만한 볼 컨트롤을 지녔습니다. 

 

말디니의 환상적인 드리블

 

경지에오른 드리블로 상대를 순식간에 제쳐 오버

래핑을 나가거나 압박이 심할땐 화려한 볼 테크닉

으로 이목을 끈 다음 어떤 위치에서든 정확하게 올라

가는 양발 크로스, 상대방이 수비 라인을 올리면

간간히 터지는 중거리 슛에 세트 피스에서 날카로운

헤딩 능력까지 갖춘 사이드백의 교과서 그 자체였죠.

더군다나 25년을 뛰는 동안 레드카드가 단 2장에 

불과한 역동적이지만 영리한 플레이는 정평이 났죠.

 

암흑기 동안 밀란은 스쿠테토를 획득하기도 했지만

이 시기 말디니 최고의 명장면은 바로 유로2000.

네덜란드와 대결 당시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광속

윙어 '오베르마스'와 대결하게 된 것입니다. 이미

32세의 노장이었던 말디니는 쉴세없는 오버래핑을

하면서도 경기내내 한번도 뚫리지 않는 경이적인

수비력을 보였습니다. 비록 밀란이 유로에서 우승

하지는 못했지만 유로2000 최고의 명장면으로 

손색이 없었지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밀란 제네레이션 2기

길고 긴 암흑기가 끝나고 맞이한 00/01시즌 예전에

같이 뛰던 선배이자 가족경영의 끝판왕. '카를로

안첼로티'가 감독으로 부임하며 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합니다. 그 뒤엔 파산한 명문구단 피오렌티나의

패스 마스터 '루이 코스타', 라이벌 구단 유벤투스

에서 눈 밖에난 '필리포 인자기', 마찬가지로 라이벌

구단 인터 밀란의 망해가던 유망주 '안드레아

피를로' 바르샤를 놀래킨 슈퍼 루키이자 훗날 

무결점 스트라이커라 불리우는 '안드리 세브첸코' 

등을 영입하며 전설적인 리빌딩의 시작을 알립니다.

 

이어 찾아온 02/03시즌 하향세를 맞이하던 '클라

렌스 세도로프', '히바우두' 그리고 라치오의 심벌

이자 새로운 밀란의 전설적 수비수 '알렉산드로

네스타' 영입하며 당시 최강의 클럽으로 군림한

유벤투스 챔피언스리그에서 격파하고 빅이어를

들어올리며 밀란 제네레이션 2기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03/04시즌엔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 백 중 하나인 '카푸', 브라질산 초특급

유망주 '카카' 등을 영입하여 스쿠테토를 획득했죠.

 

그리고 04/05시즌엔 철의 벽이라 불렸던 네덜란드

 탑클래스 센터백 '야프 스탐', 절정의 골 결정력

 보여준 아르헨티나산 폭격기 '에르난 크레스포'

 합류하여 위 사진과 같은 전설적인 스쿼드를

완성합니다. 그러나 04/05시즌은 말디니 최악의

시즌  하나로 꼽히는데요. 이름 값은 최강이지만

노장으로 꾸며진 수비라인 '말-네-스-카' 부상으로

몇 경기 밖에 가동되지 않았으며, 리그에선 라이벌

유벤투스에게 밀려 2위로 시즌을 마감합니다.

 

국내에서 유명했던 바로 그 장면

 

 

악몽은 여기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시즌은 향후

최악의 승부조작 사건 '칼초폴리 사건'으로 이어져

우승컵이 박탈되어 우승팀이 없는 최악의 시즌으로

남았습니다. 제가 AC밀란의 오랜 팬이긴 하지만 

세리에A는 승부조작 사건이 끊이질 않는 최악의

리그인 것 같긴합니다. 아무튼 이때 챔피언스리그

의 상황은 더 좋지 않았는데요. AC밀란은 챔스 

결승전에 올라 영국 챔피언스리그의 리버풀과 

결승전을 치루게 됩니다. 이때 밀란은 전반전에만

3골을 득점하며 훌륭한 경기력을 뽐냈는데요.

 

리버풀의 주장 스티븐 제라드를 일약 월드 스타로

만들어준 결정적인 헤딩골을 필두로 후반전에 

내리 3골을 내주고 접전끝에 패배하게 됩니다.

이는 이스탄불의 기적이라 불리는 역대급 챔스

결승전이라 불리웠지만 실축 '세브첸코'는 물론

파올로 말디니에게 지금까지도 아픈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경기가 리버풀 팬들이나 제

3자 기준으로는 최고의 경기이지만 밀란팬들

에겐 악몽이나 마찬가지였는데요. 

 

당시 밀란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에 대해

불만족했던 팬들은 원색적인 비난을 이어갔고 

주장이었던 파올로 말디니는 분노하며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서포터를 비판하였습니다. 이에 밀란

서포터들은 25년 동안 밀란을 위해 뛰어온 레전드

말디니의 은퇴시즌까지 홈 구장 '산시로'에서 주장

인 말디니에게 야유하는 존중이 결여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아무튼 시즌이 끝난 후 말디니는 체력적 한계를

느껴 풀백에서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하였고,

06/07시즌에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다시

한번 리버풀과 만나게 되었고 다시 만난 리버풀

에 완벽히 복수를 하며 빅이어를 한번 더 획득하고

08/09시즌 AC 밀란 팬들을 제외한 전세계 모든

축구 인사들에게 찬사를 받으며 길었던 선수 생활

을 끝마칩니다.

 

밀란 제네레이션 2기

 

위대한 캡틴 '말디니'

말디니가 25시즌, 902경기에 출장하며 7개의

스쿠테토와 5개의 빅이어를 들어올리는 동안

말디니는 밀란과 이탈리아에 정신적 지주로서

팀의 큰 버팀목으로 활약하게 되는데요. 밀란의

경우 감독이 바뀌면 선수단 장악과 팀의 파악을

위해 신임 감독이 가장 먼저 하는일이 말디니와

의 접견이었습니다. 오랜시간 스타로 활약하며

날강두처럼 파벌을 만들법도 한데 바레시가

말했듯 말디니는 한번도 인간 관계로 말썽을

피운 적이 없었습니다.

 

밀란에 재임하여 선수단 장악에 힘들어한 자케

로니를 도와 수년간 재임하도록 하고 스쿠테토

도 들수 있도록 했으며, 세브첸코처럼 처음 입단

하는 선수들의 적응을 도와 팀에 잘 융화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죠. 때문에 말디니와 감독은

필연적으로 가까워질 수 밖에 없었고 현역시절

워낙 강철같은 수비력으로 유명했던 탓에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적인 공격수 '라울 곤잘레스'

'부트라케뇨' 사키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로 부임

하자마자 어떻게 말디니를 뚫을 수 있는지 안첼

로티 감독이 첼시에 부임했을때는 첼시의 전설

적인 수비수 '존 테리'가 파올로 말디니에 대하여

물어볼정도 였지요.

 

27살의 아드리아누를 상대하는 40살 맑디니 (아드리아누의 웃음이 압권)

 

그런 말디니에게도 상대하기 힘든 선수가 있었어요.

가장 힘들었던 선수는 얼마전 유명을 달리한 '디에고

마라도나', 그리고 두번째로 힘든 선수가 '호나우두'

라고 밝혔습니다. 둘을 상대로 경기를 하게되면 진이

다 빠질정도로 힘들었지만 또한 가장 재미있었던

상대였다고 밝혔습니다. 말디니의 커리어가 워낙

길었던 탓에 뒤에 한명이 추가되었는데요. 바로

GOAT '리오넬 메시' 였습니다.

 

마라도나, 호마리우부터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델

피에로를 거쳐 호날두와 메시에 이르기까지 상대

했던걸 보면 말디니가 피치위에 서있던 기간을 새삼

느껴지게 하네요... 게다가 제가 늙은 것 까지도...

아무튼 여기까지 자기관리의 화신이었던 영원한

밀란과 이탈리아의 영원한 주장. 역대 최고의

레프트백 파올로 말디니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은퇴 후 몇년이 지나도록 밀란에서 부르지 않아

삐지기도 했지만 결국 밀란의 기술이사로서 밀란의

새로운 도약의 주인공이자 구원 투수로 등장한

파올로 말디니.피치 위에서만 잘했던 수 많은 스타

들과 달리 뛰어난 실력과 인성으로 라이벌 선수들

에게까지 귀감이 되었던 최고의 선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관련 어록

"그 보다 뛰어난 풀백이 있습니까?"

데니스 베르캄프 (前 아스날 선수)

 

"브라질이 펠레를 잃었던 것 처럼 우리도 말디니를

  잃어야 한다."

지아니 리베라 (前 AC밀란 선수)

 

(자신의 Best 11에 말디니를 뽑으며)

"이 자리에 저를 넣는 것은 올바르지 않아요. 저도

  이 수비수들과 뛰고 싶긴하지만 이 선수진을 완결

  지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밖에 떠오르지 않네요."

가브리엘 에인세 (前 맨유/아르헨티나 풀백)

 

"현 시점에서 리오넬 메시가 최정상에 있고, 카카가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으며, 지단은 의심할나위

  없이 천재였으나 누군가 내게 최고의 선수를 묻는

  다면 '파올로 말디니'다."

알렉스 퍼거슨 (前 맨유 감독)

 

"말디니는 본받아야만 하는 존재다."

알렉산드로 네스타 (前 AC밀란 수비수)

 

"파올로를 대체할 선수는 없다. 그는 밀란 그 자체다."

카를로 안첼로티 (前 AC밀란 선수/감독)

 

"상대가 누구이던지 파올라가 인간 관계로 말썽을

  일으킨 적은 없습니다."

프랑코 바레시 (前 AC밀란 수비수/주장)

 

"말디니는 제 우상이자 롤모델 입니다. 내 이름도

  말디니처럼 오랬동안 기억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세르지오 라모스 (現 PSG 수비수)

 

"말디니는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다. 당연히 나의

  우상이다."

카를레스 푸욜 (前 바르셀로나 수비수)

 

"그는 챔피언스리그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수비수

  다. 특히 놀라웠던건 공을 가졌을때 수비수가

  아닌 클래스가 있는 미드필더 같은 플레이를

  펼친다는 것 이다."

호니우지뉴 (前 AC밀란/바르샤 선수)

 

"1994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기억하는가?

  바레시와 코스타쿠르타가 경고누적으로 나오지

  못해 센터백으로 출전한 말디니는 평생 거기서

  뛰었던 것 처럼 우월했다."

로날드 쿠만 (前 바르셀로나 수비수/감독)

 

"훌륭한 선수들이 있고, 월드클래스 선수들이 존재

  한다. 그리고 그 경지를 뛰어넘는 지배자가 있다.

  말디니가 그 예시다. 그는 밀란의 상징이다."

알렉산드로 델피에로 (前 유벤투스 공격수)

 

"파올로 말디니는 내가 상대했던 수비수들 중 단연 최고다."

호나우두 (前 인터밀란/AC밀란 선수)

 

"말디니는 내게 있어 아이돌 중 한명. 그를 뛰어넘고

  싶다고 생각했다. 머리가 매우 좋고, 팀을 조작

  하는 방법을 알고있었다. 이 것은 말디니 밖에 할

  수 없는 것. 내 꿈 중 하나는 그를 추월하는 것이었다."

호베르투 카를로스 (前 레알 풀백)

 

"기술적인 능력만 따진다면 단연 호나우두가 최고

  의 선수다. 그러나 모든걸 종합해보면 말디니가

  최고의 선수다. 진정한 수비수.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수비수. 앞으로도 최고일 수비수."

안드레아 피를로 (前 밀란 선수)

 

(안첼로티 감독이 첼시에 부임하자)

"나는 안첼로티에게 몇번이나 말디니가 어떻게 해왔

  는지 물어봤다."

존 테리 (前 첼시 주장)

 

"말디니는 내가 상대한 수비수 중 가장 까다로운

  수비수였다. 그는 강하고 똑똑하며 가장 완벽한

  수비수이다."

즐라탄 이브라이모비치 (밀란 선수)

 

"저는 선수로서 40살이 넘은 나이에 뛴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현대 축구에서

  스위퍼의 역할이 없어지지 않았다면 그는 5년은

  더 뛰었을 것 입니다."

디노 조프 (前 유벤투스 골키퍼)

흔한 수비수 패스 실력

"내가 밀란에 왔을떄 상황은 정말 좋지 못했어요.

  선수는 물론 코칭 스탭까지 전부 기존 감독

  (파비오 카펠로)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죠.

 

  저는 파올로와 긴 시간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날 최대한 도우려고 했고, 목요일마다 열린

  연습 경기  항상 선수를 독려하고 실전처럼

  최선을 다해 뛰어 주었어요.

 

  그는 모든 감독이 원하는 이상적인 주장 그 자체

  입니다. 단단하며, 과묵하지만, 팀의 중심을 잡아

  주고, 확실 메세지를 전달하는 주장말입니다."

오스카 타바레스 (前 밀란 감독)

 

"내가 밀란에 처음왔을땐 모두들 예전에 성공했던

  전술 (사키/카펠로의 전술)을 바꾸는 것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갖고 있었어요.

 

  밀란의 전술을 바꾸고자 노력했지만 초반 성과가

  좋지 못해서 선수들은 물론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까지 저를   비난했습니다. 특히 실비오는 보통의

  압박을 넘어 전술은 물론 인신공격까지 받았어요.

  저는 '공산주의자'란 말도 들었지요.

 

  그런 밀란에서는 오직 파올로만이  "당신의 전술이

  해답이니 당신의 전술대로 하세요."라며 격려해

  주었죠. 그의 입장에서는 구단의 편을 들기만하면

  편한일인데 구단과 선수들에게 저를 변호해주었

  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스쿠테토는 물론 제가 3년동안

  밀란에 머물 수 있었지요."

알베르토 자케로니 (前 밀란 감독)

 

"당시 일반적인 수비수들은 공 아니면 상대 공격수

  만 신경쓰면서 수비를 했었어요. 하지만 파올로는

  어떻게 공간에 대해서 효율적으로 마크할지를

  티소티, 코스타쿠르타, 바레시와 항상 고민했죠.

 

  파올로는 그들 중 가장 자유로운 역할을 부여

  받아 본인의 공간을 지키면서 동료들을 도와

  완벽한 수비력을 뽐냈어요. 더군다나 그는 양발

  을 자유자재로 쓰는데다 모든 수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기에 감독 입장에서는 후보 선수

  한 명을 더 갖고 있는 느낌이었죠."

아리고 사키 (前 밀란 감독)

 

"말디니는 밀란 유소년팀에서 뛸 당시 아버지가

  너무 유명하다는 이유로 항상 야유를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상대 유스팀 감독인 지지 라디스가

  그러더군요. "파비오 자네. 체사레의 아들을 뛰게

  할 작정인가? 축구에서 편애는 범죄야!"

 

  나는 그럼에도 파올로를 피치위에 올렸고 경기가

  끝난 후 지지는 내게 와서 다시 한번 말했죠.

   "말디니 부자에게 찬사를 전해주게. 나는 여지껏

   저런 재능을 본 적이 없다네." 아마도 그는 현역

  시절 수비수로 뛰어서 파올로의 재능을 단번에

  알아본 것 같더군요."

파비오 카펠로 (前 밀란 감독)

 

"구단에서 어린 파올로에게 어디서 뛰고 싶은지

  물어봤다고 합니다. 그는 '팀이 원하는 포지션'

  이라고 했다더군요. 처음에 그는 라이트백으로

  뛰었습니다.

 

  그런데 레프트백에 공백이 생겼고 엄청난 노력

  끝에 왼발 밸런스를 바로잡고 레프트백으로 데뷔

  에 성공했지요."

파비오 카펠로 (前 밀란 감독)

 

"6살 무렵부터 파올로는 공과 항상 붙어 있었어요.

  그때 취미로 축구를 시켰죠. 그러던 어느날 파올로

  가 슈팅을 하는 사진을 봤는데 머리, 어깨, 팔, 다리

  까지 모든 밸런스가 완벽했어요.

 

  뭔가를 느낀 저는 친분이 있었던 밀란 스카우터를

  불러 입단 테스트를 보게 했고 결과가 괜찮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나중에 알게된 사실인데 테스트

  가 끝나자 마자 단장실로 숨차도록 뛰어가 무조건

  영입해야 한다고 했다더군요.

 

  그 친구는 아들이 데뷔할때까지 아들의 재능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는데

  파올로가 장례식에 참석해서 영정사진까지

  들어주었죠."

체사레 말디니 (前 밀란 감독)

 

"아들은 내게 경기장에서도 '아빠'라고 말했지만

  저는 편애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려고 과하게

  칭찬한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그럼에도 내말에

  반하거나 둘이 나눈 대화를 라커룸에 한번도

  이야기 한 적도 없었지요.

 

  아마 파올로는 감독을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가 감독으로 부임하는 동안 옆에 있으면서

  많은 스트레스 받은 사실을 목격했고, 본인도

  동시에 느꼈다고 고백했거든요."

체사레 말디니 (前 밀란 감독)

 

"프랑코 바레시와 같은 플레이가 가능한 선수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파올로 바레시 이상으로 잘해줬습니다.

 

  밀란의 상징으로 말해지지만 사실 그 것 이상

  이죠. 그는 밀란 그 자체입니다. 그의 은퇴와

  함께 등번호 3번은 영구 결번이 됩니다. 하지만

  그의 아들 중 누군가가 밀란의 일원으로 세리에

  에 데뷔하여 플레이 할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때까지 등번호 3번은 보관해두겠습니다. 밀란

  에서 플레이 하는 선수가 그리 간단히 출현하지는

  않을 것 입니다. 하지만 저는 말디니 가문의 전설

  을 다시 한번 믿고 싶습니다."

아드리아노 갈리아니 (前 밀란 부회장)

 

※ 참고로 차남 '다니엘 말디니'가 밀란에서 데뷔해

    3대가 밀란에서 뛰게 되었지만 3번을 달기엔 가치

    가 훼손될까 27번을 달았습니다. 아마 공격수라

   은퇴할때 까지 3번을달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 본 게시물은 핸드폰 해상도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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