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디오로 듣기를 원하신다면?
철용 : 네. 박철용입니다.
경비 : 네. 여긴 경비실인데요. 세무사님께 무슨 손님이 왔다 가셨네요?
철용 : 손님이요?
경비 : 별천지 모텔에서 오셨다는데, 혹시 아시는 분인가요?
철용 : 아... 제가 투숙했었는데 놓고 온 게 있어서 가져다주신다네요.
경비 : 어쩐지. 무슨 상자 같은 걸 맡기고 가셔서... 퇴근할 때 찾아가세요.
나는 기지를 발휘해서 위기를 넘겼고 곧장 경비실로 내려가서 상자를 수거해서 올라왔어. 상자를 열었는데 포스트잇이
붙어있는 USB가 하나 있었지. 포스트잇에는 휴대전화기 번호로 보이는 숫자가 적혀있었어. 나는 내 컴퓨터에 USB를
꽂고 탐색했는데... MP3 파일이 하나 있었어. 나는 재생 버튼을 눌렀지...
흥신소 A : 감사합니다. 철용 씨도 어떻게 엮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조심하십시오.
아까 흥신소와 나눴던 통화 녹취였어. 나는 무서웠어. 경찰에 신고할까? 하지만 내겐 어떠한 위해도 가해지지 않았고,
내게 이걸 보낸 사람이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상황. 나는 일단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지.
철용 : 여보세요. 박철용입니다. 혹시 상자를 보낸 분이신가요?
남자 : 네. 김상도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철용 : 이걸 제게 보낸 용건이 뭔가요?
상도 : 아니 어떤 노인네가 주던데... 통화 녹취는 당사자 외의 사람이 가진 건 불법이잖소? 놓고 갔나 해서 친히 보내
드렸지. 혹시 제가 결례를 범했다면 오늘 저녁이나 저와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제가 후하게 대접하겠습니다.
그날 밤 나는 어떻게든 이 사건을 끝맺음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김상도라는 남자와의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어.
설마 서울에 저녁 시간대에 식당에서 만나는데 무슨 일이야 벌어지겠어... 그렇게 문을 열고 식당에 들어갔는데, 식당은
현관 쪽 불만 켜져 있었고, 뒤쪽 모든 불은 꺼져있었어.사람은 딱 한 사람. 김상도로 추정되는 남자만 선글라스를 쓴
채로 앉아있었지.
상도 : 인사가 늦었군요. 나는 별천지 주점을 운영하는 김상도요.
철용 : 안녕하십니까? 세무사 박철용입니다.
상도 : 아직 한배를 탔는지 내가 알 수는 없지만, 처음부터 일 처리 하는 방식이 너무 불쾌해서 한번 이렇게 만나 뵙고 저희 뜻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철용 : 죄송하지만... 그건 피차일반 아니겠습니까?
상도 : 우리가 먼저 잡음은 일으킨 건 아니지 않나? 앞에선 깔끔한 척하면서 뒷조사하는 누구보다는 나은 것 같은데
이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철용 : 그건... 아무래도 저희가 계약으로 이루어진 관계는 아니다 보니, 솔직히 일은 일대로 하고 돈은 못 받을까 봐
그랬습니다.
상도 : 상대방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인가? 그건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내가 회장님만 5년을 넘게 모셨는데... 너무
착한 게 탈이란 말이죠.. 사람을 너무 잘 믿어서... 그래서 당신이 얼마만큼의 능력이 있는지도 모르고, 당신이
우리와 함께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데 정보를 다 주신단 말이야? 그런데도 당신은 뒷조사도 하고 이미 우리를
너무 많이 알아버렸네?
(할 말이 없었다.)
상도 : 그래서 이 자리에 당신을 모신 건 답변을 듣기 위해서요. 당신의 의지에 따라서 우리도 피드백을 해야 하지 않겠소?
무서웠어. 그 자리에선 어떠한 폭력도 없었고, 김상도라는 사람은 최대한 내게 격식을 차려서 말하고 있었지. 하지만 그 실상은 내가
변명해서 빠져나갈 모든 구멍을 막고 나를 압박하고 있었어. 평상시였으면 태연하게 빠져나갔을지도 모르겠지만, 그에게 풍기는 위압감 때문에 나는 큰 압박감을 받았고, 그 상황에서 나는 할 말이 하나밖에 없었지.
철용 : 저는 별천지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맡겨만 주시면 최고의 퍼포먼스로 보답하겠습니다.
상도 : 뭐. 그건 다행이긴 한데, 우리 실익을 따져보자고요. 당신의 능력도 모르는데 저희가 뭘 믿고 당신과 함께해야 하나요?
철용 : 그렇다면 회장님을 불러주십시오.
상도 : 회장님이 시간을 내서 한번 만나긴 했지만, 회장님이 그렇게 한가하신 분으로 보이나 보죠?
철용 : 결코 아닙니다. 어차피 계획을 듣고자 하시는 건 회장님 아닙니까? 이렇게 중요한 일을 왜곡되지 않도록 대면
보고도 하지 않고.. 세무 지식이 없는 당신이 전달하겠다는 건가요? 만약 제가 직접 보고드려서 회장님이 만족
하지 못하면 그때 버림받아도 되지 않습니까?
상도 : 음... 잠시 기다리시오.
나는 텅텅 빈 식당에 홀로 남겨졌다. 아마 밖엔 누군가 지키고 있을 게 뻔하다. 사실 큰소리를 치긴 했지만, 나는 별
대책은 없었지. 그런데 위기 상황에 처하니 그 몇 분에 불과한 시간 동안 각종 아이디어가 머릿속에 빨려들듯이 들어
왔어. 잠시 후문이 열리고 호철과 상도가 들어왔어. 호철의 기분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어.
호철 : 이게... 믿음에 대한 답례인가?
철용 : 다시 한번 이번 일에 대해선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의 조급함 때문입니다.
호철 : 일단 생각이 나 한번 들어보지.
철용 : 혹시 조직원 외에 믿을만한 사람들이 있으십니까?
호철 : 사람이야 항상 차고 넘치지. 근데 왜?
철용 : 제가 세운 시스템의 시작은 사업체를 분리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호철 : 정확히 말해봐.
철용 : 먼저 주점과 모텔을 분리하는 겁니다. 모텔은 원래 주인이신 회장님께서 그대로 유지하시고, 주점은 바지
사장으로 이름만 빌려서 운영하는 겁니다. 이때 중요한 점은 그 바지사장은 철저히 무재산자여야 하며, 표면적
으로는 회장님의 건물인 모텔 지하에 임대를 들어와서 운영하는 방식을 택할 겁니다. 그리곤 아시겠지만, 저희
주점은 철저히 현금만 받아서 운영합니다. 어차피 저희 고객 대다수가 고위층이니 법인 카드를 쓰는 사람들만
아니라면 그들도 추적되는 걸 원치 않으니 큰 반발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간혹 있는 법인 카드 매출과 현금 매출
일부를 소급하여 임대료를 조금 웃도는 수준으로 맞추는 겁니다. 그럼 어차피 임대료는 전부 사장님께 돌아오고,
현금 수익은 당연히 신고를 안 하는 소득이니 주점에서 발생하는 세금은 미미할 것입니다. 주점에서 이렇게만
절약한다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연간 수억에서 업소가 흥한다면 수십억도 남길 수 있습니다.
호철 : 흠... 계속해 봐요.
어느새 호철은 관심을 두고 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철용 : 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죠. 저는 주기적으로 주점 사장 명의를 바꾸며 영업을 할 생각입니다. 어차피 국세청
에서 봤을 때도 매출이 나지 않는 영업장 사장이 짧은 주기로 바뀌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테니 의심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개업과 폐업을 반복하며 기존 탈세 기록을 주기적으로 리셋 시키고... 회장님의 조직과 정재게
연줄만 이용하면 서울 밤거리는 그저 대표님의 돈을 쓸어 담는 돈 통에 불과할 것입니다.
호철 : 역시 내가 사람을 잘 봤군요. 상도 씨. 앞으로 철용 씨 확실하게 서포트 부탁합니다. 철용 씨는 앞으로도 이런
혜안을 제게 보여주면 섭섭지 않은 보상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이건 금일봉입니다.
철용 : 감사합니다. 회장님.
호철 : 시간도 늦었는데.. 괜찮으면 저와 술 한잔 하시겠습니까?
상도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나를 토닥여주었고, 나는 살짝 돈 봉투를 열어 보았다. 봉투 안에는 백만 원짜리 자기 앞
수표 열 장이 들어있었다. 주머니에 천만 원 이상 들고 다니는 남자... 만약 내가 묘수를 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호철을 따라갔다.
호철의 고급 외제차를 타고 불과 5분도 지나지 않아 호철의 모텔에 도착했고, 우리는 모텔 최상층으로 향했다. 나는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옥상 최정상 층에는 한 개 층 전체 규모에 최상급 스위트룸이 있었다. 호철은 이곳이 자기가 묵는
숙소라고 말하며 창가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의 벽면은 전부 유리창으로 되어있어 서울 시내가 드러나 보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호철 : 출출하죠? 음식과 술은 금방 올라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요.
철용 : 아닙니다. 회장님. 그저 이런 환경이 제겐 정말 낯설어서요.
호철 : 한번 이쪽으로 와보시겠어요?
나는 호철과 함께 창문 앞에서 한참을 창 밖을 바라보았다.
호철 : 제가 제일 좋아하는 풍경이에요.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서울 한복판에 내 건물이 올라가 있고, 저는 그
꼭대기 층에서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저 사람들을 내려다볼 수 있죠. 저들의 시야에서는 길거리에 음악이 울려
퍼지고... 빛나는 도심처럼 보이겠지만, 이 정도 높이에서 이따금 저런 광경을 보면 제겐 저 사람들이 개미 떼처럼
보일 때도 있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개미들이 짝짓기 하는 장소만 빌려줌으로써 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죠.
하하하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미친놈 같았다.... 그때 방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는데...
인물 열전 ④ 김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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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소설의 내용은 철저한 허구로써, 특정 조직 및 세력을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으며 만약 소설 속
인물 혹은 조직이 실존한다 하여도 이는 우연의 일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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