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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삼국지 제갈량 공명 [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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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제갈량 (자: 공명)

 

생몰

181년 출생

234년 사망

 

진정한 삼국지의 주인공

지난 조운을 다룰때 삼국지가 소년 만화

라고 하면 주인공은 바로 조운이라고

말씀드렸었지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삼국지의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제갈량이 되겠습니다. 지금도 천재적인

전략과 두뇌를 갖고있는 사람에게 '제갈

OO'라는 별명을 붙여주는 사례는 흔할

정도 이지요.

 

제갈량은 유비의 삼고초려를 통해 유비

에게 임관하고 촉나라 건국에 큰힘을

보태었습니다. 유비 사후에도 촉의 국력

을 키우고 북벌을 진행하는 등 중국 역사

상 최고의 천재이자 충신으로 지금까지도

큰 존경을 받고있지요. 오늘은 바로 삼국

지의 진짜 주인공 제갈량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오나라의 충신 '제갈근'

제갈량의 전성기

1. 삼고초려 (三顧草廬)

제갈량은 서주 양도현 출생으로 아버지

를 일찍 여의고 숙부인 제갈현 밑에서 

성장합니다. 이때 7살위의 형님인 '제갈

근'은 제갈현을 따르지 않고 양주로 이주

하여 향후 오나라 최고의 내신 (외교관)

으로 활약합니다. 

 

이 후 '수경 선생'이라 불리우는 '사마휘'

밑에서 방통, 서서 등과 함께 학문을 

배우게 되는데 세상에 뜻이 없던 제갈

량은 천거를 하지 않고 농사를 짓게 

됩니다. 당시 유비는 유표에게 의탁을

하던 중 채모의 계략으로 암살 위협을

받고 도망치던 중이었습니다.

 

이때 유비는 사마휘와 만나가되고 유비

는 자신에겐 관우, 장비, 조운 같은 훌륭

한 인재들이 있는데도 도망자 신세를 

면치 못하는 자신의 형편을 비관하였

습니다. 이때 사마휘는 유비에게 "그대

에겐 용맹한 장수와 시무에 능한 이들

은 있어도 군략에 능한 이들은 없소.

와룡, 봉추 중 한명만 얻을 수 있어도 

(복룡봉추 伏龍鳳雛) 능히 천하를 얻을

수 있을 것이오." 라고 하였습니다.

 

'우길'과에 속하는 인물 '사마휘'

 

※ 복룡봉추

엎드려있는 용과 봉황의 새끼라는 뜻

으로 초야에 있는 훌륭한 인재를 뜻

하는 말입니다.

 

유비는 와룡과 봉추가 누구인지 물었

지만 사마휘는 대답해주지 않았고 그날

밤 자신의 집에 유비를 재웁니다. 밤중

에 유비는 문 밖으로 어떤 손님이 온

것을 직감합니다. 그자는 사마휘에게

자신이 유표에게 임관했지만 유표에게

실망하여 하야하였다고 말을합니다.

그러자 사마휘는 "자네같은 인재가 왜

유표 밑에서 일을하는가? 지금 자네의

진정한 주인이 될 사람이 자네 앞에 

있는데 왜 몰라보는가?" 라고 하였습니다.

 

기대에 부푼 유비는 다음날 잠에서 깨자

마자 그 사람이 누군지 물었으나 사마휘

는 또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나중에 그

인물이 신야의 저잣거리에서 노래를 불러 

유비의 이목을 끄는데 바로 '서서'였습

니다. 서서는 유비군에 임관한 뒤 조인과 

이전 등을 격파하여 유비에게 전략가의

중요성을 깨우쳐주지만 효자였던 서서의

약점을 꿰고 있었던 정욱이 그 틈을 놓치

지 않고 서서 어미니의 필적을 따라하여

조조 세력으로 오라는 '거짓 편지'를 작성

합니다. 이에 서서는 조조 세력으로 이적

하게 됩니다.

 

피오렌티나가 파산하여 AS로마로 눈물의

이적을 한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마냥

유비와 눈물의 결별을 한뒤 "제가 비록

조조의 휘하로 가게되지만 절대 조조를

위해 어떠한 계책도 주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한 뒤 드디어 '와룡'과 '봉추'의

정체를 말해줍니다. (실제로 연의 한정

으로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대패에 일조

하게되죠.)

 

연의에서 유비에게 참모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서서'

 

이를 들은 유비는 다시한번 사마휘를

찾아가 제갈량과 방통에 대해 묻자 사마

휘는 웃으며 "서서. 갈거면 지 혼자 갈 

것이지 왜 제갈량을 세상에 나오게 하여

피를 토하게 하는 것이냐! 제갈량이 세상

에 나오니 우리같은 사람들이 심심해 

지겠구나!"라며 한탄했다고 합니다.

 

뒤이어 사마휘는 "제갈량은 항상 자기를

관중과 악의에 비교한다네."라고 답하였

습니다. 이때 삐돌이 관우는 "관중과 악의

에 비교하는 건 과한거 아닙니까? 선넘네"

라고 말하자 사마휘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음... 생각 해보니 두

사람은 제갈량에게 비교하긴 어렵소이다.

공명은 능히 주문왕을 도와 주나라 800년

사직을 일으킨 강자아나, 사백년 한실을

이르키는대 지대한 공을 세운 장자방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외다."라고 중국 역사

상 최고의 천재들과 비교하는 무시무시한

발언을 남기고 자리를 뜨게되죠.

 

이러한 발언을 들었으니 이 세상 어떠한

군주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유비는 바로 

형주의 제갈량에게 찾아갔고 제갈량을

2번이나 만나지 못하여 삐돌이 동생들이

툴툴대는데도 불구하고 3번이나 찾아가는

정성을 제갈량에게 보여 제갈량을 등용

하는데에 성공합니다. 이것이 초가집을

세번 방문한다는 '삼고초려(三顧草廬)'

의 유래입니다.

 

제갈량이 조조에게 갔다면? → "지금까지 삼국지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비가 제갈량을 얻자 조조가 서서에게 

제갈량의 호구조사를 시작합니다. "서서

당신도 뛰어난 인재인데, 그대와 비교하면

제갈량이란 인물은 어느정도 수준인가?"

라고 물었고 서서는"저와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제가 반딧불이라면 제갈

량은 보름달입니다."라는 비유를 하는데

이후 보여준 삼국지 연의에서의 제갈량

의 활약은 보름달이 아니라 거의 태양

수준이었죠.

 

이후 유비와 제갈량은 조운이 그러했던

것 처럼 유비와 같은 방에서 식사와 잠도

청했을 정도로 각별한 사이가 되었고 

이를 시기했던 유비의 두 동생들에게

'수어지교'를 설파하며 다그쳤던 일화

도 있었을 만큼 유비에 있어 최고의 

부하였습니다.

 

 

삼국지 유비 현덕 [촉]

이름 유비 (자: 현덕) 이력 162년 탁군 출생 219년 한중왕 221년 촉한 소열황제 223년 사망 (백제성) 현대에서 바라보는 유비 아마도 대한민국 아니 어쩌면 일본 에서도 가장 유명한 중국인이 아닐까

normalmister.tistory.com

▲ 유비와의 일화에 대해 궁금하다면?

 

2. 적벽대전

삼고초려 당시 제갈량은 익주에 유비를 

하북에 조조를 강동에 손권을 내세우며

천하를 3세력에 의해 분할된다는 '천하

삼분지계'를 주장하며 유비의 세력적

자립을 주장하였습니다. 당시 유비는

유표에게 의탁한 방랑 세력 그 자체였기

때문에 일단 기반 세력을 확고히 닦아 

놓는게 중요했기 때문이죠.

 

당시 중국 전역에서 가장 중요한 하북

지역을 통일했던 조조에게 두려운 것

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조조의 다음

세력은 강동에서 미약하나마 조조 다음

으로 세력을 키우고 있었던 손권의 동오

였습니다. 동오가 조조의 공식적인 타겟

이 되자 손권의 부하들은 항전과 항복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죠.

 

당연히 손권이 항복하게 되면 안그래도

막강한 조조의 세력이 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해져 제갈량의 주장했던

'천하삼분지계'가 물건너 가기 때문에

제갈량이 직접 동오에 가서 항복론을

주장하는 동오의 인사들과 키베(설전)

를 뜨는데요. 이 장면 역시 삼국지의

명장면 되시겠습니다.

 

쫄보주제에 코에이에선 호전적인 영감처럼 그려줌.

 

1) 장소

장소: 그대는 스스로를 관중과 악의에

비교했는데 당신의 주군은 패하기만

하고 우리에게 손을 벌리려한다. 관중

과 악의가 주군을 그렇게 섬겼나?

공명: 우리 주군은 여남에서 조조에게

패하신 후 천명의 병사로 하후돈과 조인

을 패퇴시켰다. 유종이 갑자기 조조에게

항복했을때도 동족의 땅을 빼앗지 못하고

모두를 데리고 피난을 가셨다. 자고로 

적은 수가 많은 수를 당하지 못하는 법

이고 승패는 병가지상사다. 한고제도 

항우에게 연패하였지만 해하전투 한번

으로 전세를 바꾸지 않았나?

 

2) 우번

우번: 조조의 군대가 백만인데 대책은?

공명: 대부분이 유표와 원소에게 흡수한

잡졸으로 두려워 할 것 없다.

우번: 그렇게 자신있는 사람이 신야를

넘겨주고, 당양에서 패하며 우리에게 손

을 벌리는가?

공명: 우리 병사는 수가 적어서 패했을

뿐이다. 그리고 비록 패했을 지언정 지금

하구에서 재기를 노리고 있다. 그에 비해

장강의 천험함과 싸울 군대도 있으면서 

항복을 생각하며 나라 팔아먹을 생각부터

하는 그대들이 어찌 우리 심정을 알겠는가?

 

정치 점수 80점대의 화타 친구 '우번'

 

3) 설종

설종: 그대는 조조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공명: 한실의 역적이다.

설종: 조조는 이미 한나라의 2/3를 차지

하였는데 이는 하늘의 순리가 그를 따라

가는 것 이 아니겠는가?

공명: 조조는 조부때부터 한실의 은혜를

입었다. 그래도 난세를 틈타 세상을 훔치

는게 순리라면 그대도 그대의 주군이

쇠퇴한다면 주군을 얕잡아볼 것인가? 그

말은 패륜의 논리이니 더이상 말하지 마라.

 

4) 엄준

엄준: 지금까지 당신이 한 이야기는 궤변

에 불과하니 말할 가치도 없다. 어떤 경전

을 읽으셨는가?

공명: 경전이 무엇이 중요하지? 그 옛날

강자아(태공망)이 어떤 경전을 읽었는지

들어보기나 했는가? 자고로 선비란 쓸모

있는 선비가 있고 쓸모없는 선비가 있다.

쓸모 없는 선비는 고작 문장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이다. 난 그렇게 쓸데없이 책

이나 읽고 허송세월 하지 않았다!

 

5) 주유

노숙: 조조군이 쳐들어왔는데 어떻할 생각

인가?

주유: (거짓말)답이 없어서 항복할 것이다.

노숙: 당신은 동오 최고의 사령관아닌가? 

주유: 군사도 아깝고, 지면 나만 욕먹을텐데 

노숙: 공명 당신도 무슨말 좀 해보시오.

공명: (웃으며) 주유공 말이 맞소. 군사도

백성도살고 주유 당신의 목숨도 건지는데

당연한거 아니오?

노숙: 아니 그럼 우리 주군에게 굴욕을 안겨

드리란 말이오?

공명: 사실 방법이 하나 있소. 조조가 동오 

최고의 미녀 대교와 소교 자매를 흠모한다

던데 그 두 자매를 갖다 바치면 되지않겠소?

주유: 말같지도 않은소리! 증거는 있나?

공명: 조조의 아들 조식이 지은 동작대부에

그런 내용이 있소이다. (왜곡된 동작대부를

읖는다.)

주유: 그 늙은 역적놈이 나를 욕보이는구나!

공명: 그 옛날 왕소군도 흉노에게 시집가서 

화평했지 않았소? 게다가 그 자매는 하찮은

백성에 생판 남인데 왜 그리 화를 내는가?

주유: 그 하찮은 생판남들이 내 형수와 내 

아내란 말이오...

공명: (거짓말) 아 죄송하오 실언했소.

 

강동이교라 불린 강동 최고의 미녀 '소교'

 

이렇게 당시 오나라 최고의 참모들이었던

노숙, 주유를 분노하게 만들고 연이어 항복

파 최고의 브레인이었던 장소까지 설전으로

꺾어버리면서 오나라의 여론을 항전으로 

바꾸고 동맹을 맺고 항전 계책을 수립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동오는 10만 군사를 모았으나 병장기

가 조조의 군대였던 100만에 턱도 없이 

모자랐습니다. 이때 주유는 제갈량의 능력

을 시험하기 위하여 제갈공명을 불러 다음

과 같이 말합니다.

 

주유: 조조와 싸우기 위해서 어떤 병기를

준비 하는게 좋겠소?

공명: 수상전이라면 화살이 많이 필요하겠

지요.

주유: 공의 말씀이 곧 내 뜻과 같소이다. 

옛적에 태공망은 친히 무기를 많이 만들어

승리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은바 있소이다.

공께서도 우리 오를 위하여 10만 개의 

화살을 구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공명: 도독의 명령이라면 구해야지요. 언제

까지 구하면 되겠소이까?

주유: 열흘 안에 만들어 주시면 고맙겠소.

공명: 조조가 언제 쳐들어올지도 모르는데

어찌하여 그리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단

사흘이면 충분하오.

주유: 사흘이라 하였소?...진중에 실없는 말

은 있을 수 없소!!

공명: 제가 어찌 도독께 실없는 말씀을 하겠

소? 만약 사흘안에 준비하지 못한다면 군법

에 의해 중벌을 받도록 하겠소.

 

연의 최대의 피해자 중 하나인 '주유'

 

당시 제갈량을 시기하던 주유는 제갈량이 

죽을 날만 남았다며 쾌재를 부릅니다. 허나

사흘째 되던 날까지 제갈량은 공방 주변을

서성이기는 커녕 게으름만 피웠습니다.

노숙은 제갈량이 걱정되어 "오늘이 화살

10만개 납품날인데 왜 허송세월만 하시오"

라고 하였으나 제갈량은 이제 화살을 빌리러

갈 때가 되었다며 짚으로된 가벼운 배 20척

을 오나라로부터 빌리고 배마다 수군을 

30명씩 태웠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한 배에

노숙과 제갈량은 탑승하여 밤중에 조조의

진영 코앞까지 전진하지요.

 

이날 밤안개는 강을 자욱하게 덮어 지척도

분간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때 공명이

병사들에게 배을 계속 움직이며 북을치고 

고함을 지르라고 명하였습니다. 노숙은 

깜짝놀라 "조조군이 쳐들어오면 어쩌시려

고 이런 짓을 하시오?"라고 말렸지만 공명

"안개가 짙어 조조는 감히 나오지 못할

것이외다. 우린 그저 여기서 술이나 먹고

풍악을 즐기다 안개가 걷힐때 쯤 돌아가

면 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윽고 조조의 진영에서 수많은 화살비가

쏟아져 내렸고 조조군의 화살은 미리 준비

한 짚에 박히기 시작했습니다. 조조는 제갈

량의 예상대로 양자강에 안개가 자욱한

상황에 비효율적인 불화살을 사용하지

않았고 새벽이 되자 제갈량은 철수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후 나중에 이를 세어보니

족히 10만이 넘는 화살이 모였습니다.

 

노숙은 이에 놀라서 공명에게 어떻게 그날

밤 안개가 낄 줄 알았냐고 물었고 공명은

"장수된 자가 천문과 지리, 음양에 어둡다면

어찌 장수라 할 수 있겠소? 난 이미 3일전

부터 안개가 낀다는 사실을 알았소. 내명은

하늘에 달려있으니 어찌 주유가 나를 죽일

수 있겠소?"라고 말하여 오나라 장수로 

하여금 존경을 받았습니다. 

 

연의 최대의 피해자 중 하나인② '노숙'

 

실제로 제갈량은 주유와 내기를 하기 전

밤과 낮에 하늘을 보며 천문을 관측하였

는데요. 밤하늘에 은하수가 뚜렷하고 거

북이가 땀을 흘리는 모습을 확인합니다.

은하수를 통해 먹구름 없는 맑은 날씨를

확인한 제갈량은 지면의 열에너지가 쉽게

빠져나갈 것을 짐작하고 이를 통해 발생

하는 수증기의 응결현상을 거북이의 따뜻

한 등껍질과 차가운 공기가 만난 이슬을

통해 미리 안개가 낄 것을 확인한 것이죠. 

 

제갈량의 이런 천문 기술은 서기 200년

대의 기상청 역할을 했던 것을 넘어서는

위용을 보여주는데요. 나중에 주유편에서

다루겠지만 적벽대전에서 조조군은 역풍이

불고 있어 화공에 대해 전혀 대응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제갈량의 도술로 바람을

동남풍으로 바꾸어 조조가 대패를 하게 

되어 황개, 주유와 함께 연의 한정 적벽

대전 1등 공신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죠.

 

신산귀모와 같은 전략 전술과 더불어

세계 최고의 마법사였던 제갈량이었습니다.

 

3. 이릉대전 이후

유비의 입촉 이후 곁에서 주군을 보좌하던

중 큰일이 벌어집니다. 219년 관우가 오군

에게 습격을 당해 사망한 사건이죠. 주군인

유비는 멘탈이 터져 오나라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죠.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는 일단

촉과 오가 손을 잡아 위나라의 세력을 약

하게 만들어 놓은 뒤 천하 패권을 다투는

계략이기 때문에 위나라의 세력이 여전히

막강한 지금 오나라와 전쟁을 할 시점은

아니었습니다.

 

이에 제갈량은 일단 위나라가 우선이라며

오나라는 나중에 제가 쳐부시게 해드리겠

다며 조운과 함께 신신당부를 하지만 유비

는 이를 무시하고 전쟁을 준비합니다. 그때

전쟁을 과도하게 준비하던 촉나라의 용장

장비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정사를 기준

으론 사방장군이었던 관우/장비/황충/마초

그리고 촉나라 최고의 전략가였던 법정

등이 죽어서 참전을 하지 못하죠.

 

연의 기준으로도 황충과 조운을 제외한

오호대장군이 이릉대전에 참전하지 않는

데 황충마저 이릉대전에서 죽고 맙니다.

촉나라는 안그래도 작은 인재풀에 개개인

의 능력으로 먹고살던 나라였는데 이 최악

의 전투로 마량, 황권, 풍습, 장남, 사마가 

를 비롯한 장수들과 수십만의 병력 그리고

주군이었던 유비마저 잃고 말지요.

 

인생무상 '유비'

 

당시 유비가 설계한 진을 보고서 제갈량은

"누가 이런 진을 짰는가? 이런 진을 설계

한 사람은 당장 참수해 버려야 한다!"라며

분노하였고 조비 역시 '병법의 기본도 모르

는 자로다!'라며 비웃을 정도의 병력운용

이었으니 대패할 수 밖에요.

 

이런 ㅄ같은 주군이라 할지라도 제갈량은

끝까지 충의를 버리지 않았는데요. 대패

하여 겨우 도망가던 유비를 쫓던 육손

앞에 나타나 팔진도를 펼쳐서 유비를 

무사히 구출하지요. 참고로 육손은 팔진도

안에 갇혀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

지만 제갈량의 장인어른인 '황승언'의

도움으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죠.

 

이후 유비는 자신의 바보짓이 괴로웠

는지 비통해하며 제갈량에게 내가 죽은

뒤 내 아들의 그릇이 탐탁치 않다면 제갈

량이 직접 나라의 수장에 오르라는 유언

을 남기면서 세상을 뜨는데 이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천재 가슴을 2번 울리는

감동의 명대사로 제갈량은 이를 계기로

다시한번 유비에 대한 충성을 다짐합니다.

 

도대체 육손을 왜 도와준건지...

 

전쟁이 끝난 뒤 제갈량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촉나라를 재건합니다. 유비 사후

제갈량이 촉나라의 국력을 회복하는데

걸린 시간은 10년으로 촉나라 대부분의

명장들을 잃고 수십만의 기용 병력과

군주까지 잃은 나라를 고작 10년만에

다시 정상궤도에 올린 것인데 이는 과거

정도로 회복한 수준 정도가 아니었는데요.

 

제갈량이 성도에 머물며 공무를 처리할땐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즐기고 밤에는 문을

잠그지 않고, 길에 떨어진 물건도 줍지 

않으며, 여러해 연속으로 풍년이 들고,

나라에서 노역을 시켜도 서로 앞다퉈 

부지런히 일했으며 군수물자, 무기, 쌀,

재물 등 부족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난세를 태평성대로 바꾼 세계

최고의 행정가로서의 능력을 발휘하죠.

진짜 나중에 초한지에서도 다루겠지만

용맹한 장수, 신출귀몰한 전략보다 

중요한게 바로 보급인데 제갈량의 보급

수준은 거의 보급의 신이라 할 수 있는

소하급이었던 것 같습니다.

 

4. 북벌

1) 칠종칠금

제갈량 인생의 하이라이트가 이제부터

시작됩니다. 제갈량은 가히 신이 내린

천재적인 능력으로 촉의 국력을 회복한

뒤 먼저 남만의 왕이었던 맹획을 공략

합니다. 이때 칠종칠금하여 북벌을 감행

할 때 후환이 없도록 만들어 놓은 뒤

선주였던 유비가 이루지 못한 한왕조

계승을 위해 유비 생전 가장 큰 걸림돌

이었던 위나라를 공략할 준비를합니다.

 

※ 칠종칠금

일곱번 잡았다가 일곱번 놓아준다는 뜻

으로 상대를 마음먹은대로 다룬다는 뜻

또는 인내를 가지고 상대가 숙여 들어

오기를 기다린다는 뜻이 있습니다.

 

말이 칠종칠금이지 제갈량과 엄청난 소모전을 벌였던 '맹획'

 

실제로 제갈량은 잡히면 변명만하는 맹획

을 계속 풀어주고 결국 눈물로서 복종을

맹세하였습니다. 남만왕의 진정한 항복

을 얻어낸 제갈량은 그제서야 북벌을 감행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여담으로 남만을 정벌하고 돌아오는 과정

에서 거센 풍랑을 만나 밀가루로 사람

머리 모양을 한 음식을 빚어서 제사를

지내 음식 '만두'의 기원이 되기도 했죠.

 

원랜 말고기로 만든 노맛음식임

 

2) 출사표

제갈량은 출전을 준비하며 당시 황제였던

유선에게 출사표를 올리죠. 출사표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천재였던 자신을 낮

추고 촉한의 미래와 황제를 걱정하고 선주

였던 유비에 대한 충성심이 담겨있는 충절

의 산물이라 볼 수 있습니다. 출사표는 총

2번 올라갔는데 227년과 이듬해인 228년

입니다. 특히 2번째 출사표는 후출사표

라고 불리는데 바로 여기서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瘁 死而後已)'가 나오죠.

 

※ 국궁진췌 사이후이

몸을 굽혀 나라를 위해 모든힘을 다하며

죽은 후에야 그만두겠다는 뜻으로 제갈

량의 충절을 대표하는 구절로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따라서 옛말에 "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제갈량의 출사표는

눈물없이는 읽을 수 없는 표문이라고

합니다. 

 

삼국지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

 

3)호로곡

북벌을 이어가던 중 제갈량은 계략으로

사마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호로곡에 농사

를 짓는 것 처럼 위장하였습니다. 계속

호로곡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주어 사마의

는 제갈량의 계략에 걸려 호로곡을 점령

하기 위해 진군했죠. 

 

제갈량은 호로곡에 화약을 설치한뒤 몰래

기다렸습니다. 사마의가 나타나자 바위로

골짜기의 입구를 막아버리고 화약을 작동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마의의 목숨을 빼앗

으려던 절체절명의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사마의

는 폭사를 피해 도망갔고 제갈량은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고 하죠.

 

※ 모사재인 성사제천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것을 이루

는 것은 하늘이라는 뜻으로 일의 성패는 

하늘에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제갈량과 급이 맞나? '사마의'

 

4) 4차 북벌

4차 북벌 당시 제갈량은 기산에서 병력을

나누어 위군을 공격하였습니다. 적을 도륙

하던 중 사마의 본대와 조우하게 되고 촉

군은 신속히 회군합니다. 그 후 사마의는

제갈량의 부대를 추격하지 않았는데 당시

위군에서는 가허, 위평 등이 사마의에게

제갈량한테 쫄았냐고 사마의를 자극합니다.

 

이에 장합은 "병법에 이르길 성을 포위할땐

반드시 출로를 열어두고, 퇴각하는 군사는

쫓지 말라 하였습니다."라 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마의는 대촉전 에이스였던

장합에게 추격을 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삼국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였던 제갈량은

당시 이미 연노를 개량하여 원흉노병을

설계한 상태로 한번 노를 쏘면 10개의

화살이 발사되는 원흉노병을 기련산의

좁은 기록에 주둔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길목 앞의 큰 나무 앞에서서 

껍질을 깍아내고 다음과 같이 크게 글을

써서 말하였습니다. "장합은 이 나무 아래

에서 죽는다." 이윽고 장합이 병사와 함께

모습을 들어냈고 원흉노병은 천개의 노

를 동시에 발사하여 장합은 정말 그 나무

아래 죽게됩니다. 

 

장합의 비참한 최후

 

참고로 제갈량이 사활을 걸고 북벌을 

진행할때 황제 유선은 간신배들과 함께

항략에 빠져있었는데요. 촉나라에서 

엄청난 보급이 있었을리 만무할 뿐더러

별 이유 없이 회군을 요청했을 정도로

촉나라 조정의 지원은 허접한 와중에

제갈량이 위나라를 식겁하게 만든 것

입니다. 

 

참고로 연의에서 제갈량은 최고의 행정가

이자 전략가이지만 실제로 정사에서의

제갈량은 유비 생전에는 전장에 나간 적

이 없는 행정가였습니다. 하지만 전장에

나가자 마자 이런 군공들을 세운 것을

보면 정말 못하는게 없는 올라운더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5) 설전

제갈량은 조진의 참모였던 왕랑과 설전을

벌여 세치 혀로 왕랑을 죽여버리는 괴....

언어 파괴력을 보여줍니다.

 

(왕랑)지력이 80이 넘는 문관인데도....고통스러워 하는 저 표정

 

왕랑: 와룡께서 어찌 하늘의 뜻을 모르고 

나오셨나?

공명: 한나라의 승상으로 역적을 토벌하러

왔는데 어찌 하늘의 뜻을 모르는가?

왕랑: 우리 무황제(조조)는 원소와 같은

버러지를 토벌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하고

문황제(조비)께서는 한나라의 제위를 물려

받아 신위를 떨치고 계신데 항복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공명: 어찌 그리 썩은 말만하는가? 조조와

조비가 세운 공이 많다 한들 조조는 한실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조비는 제위를 찬탈

하는 역적질을 저질렀다. 그대는 효렴에 

뽑혀서 한나라를 섬겼는데 위나라의 벼슬

을 받더니 조비의 역적질을 돕지 않았느냐?

이 늙은 도적놈아! 그러고서 어찌 죽은 뒤

에 한나라의 스물네 황제를 뵙겠는가? 늙은

도적은 썩 물러가고 역적이나 불러내서 나

와 승부를 가리게 하라!

 

이 설전에 촉은 감탄하고 위는 데꿀멍하게

되었고 왕랑은 울분을 참지 못해 죽어버리

고 맙니다. (주유2)

 

5. 죽음

제갈량의 신출귀몰한 계략앞에 사마의는

방어에 치중하게 됩니다. 못하는게 없는

제갈량은 이미 자신의 명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음을 파악하였고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하여 사마의에게 여자의

속옷이나 장신구 등을 보내 도발합니다.

 

하지만 제갈량의 무서움을 맛본 사마의

는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고 선물을 가져

온 사신에게 제갈량이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이에 사신은 "잠을 적게

주무시고, 식사를 잘하시지 않고, 작은

형벌까지 직접 살피신다."고 솔직하게 

대답합니다. 이에 사마의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데요.

 

※ 식소사번(食少事煩)

먹는 것도 적고 일은 번거로우니 어떻게 

오래 지탱할 수 있냐는 말입니다. 제갈량

은 이후 사마의에게 보냈던 사자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었고 사신은 제갈량에게

또한 솔직하게 대답합니다.

 

사마의의 식소사번을 전달하자 제갈량은

"중달의 말이 맞다. 나는 오래 살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제갈량의 이미지를 가장 잘 나타낸 진삼국무쌍4 엠파이어스 오프닝 (과대평가된 사마의는 여전,,,)

 

아니나다를까 제갈량은 금방 위독해져

병상에 눕고 맙니다. 계속 건강이 악화

되자 제갈량의 후계자였던 강유는 7일

동안 촛불이 꺼지지 않고, 하늘에 기도

하면 천명을 늘릴 수 있는 주술을 시도

하자고 간언하고 제갈량은 7일간의 기도

에 들어갑니다.

 

마지막날 밤 사마의는 제갈량의 별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야습을 강행하고 

위연은 강유의 제지도 뿌리치고 제갈량

의 침소에 들어가자 촛불을 떨어트려 

제갈량의 기도 의식은 실패하고 건강

이 급속도로 악화되 결국 숨을 거두고

맙니다.

 

제갈량의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본 사마의

는 바로 촉군에게 돌격하였지만 제갈량

이 미리 만들어 놓은 목상에 제갈량의

복장을 씌우고 강유가 돌격을 감행하자 

사마의는 제갈량이 도술로 일부러 별을

떨어트린 줄 알고 (지폭천성?) 수십리를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갑니다.

 

이순신 장군님이 떠오르는 장면

 

※ 사공명주생중달(死孔明走生仲達)

죽은 제갈 공명이 산 사마 중달을 도망

치게 한다는 뜻으로 죽은 뒤에도 적이

두려워 할 정도로 뛰어난 장수를 비유

하는 말입니다. 

 

적군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는 장수가

죽은줄 알았는데 다시 살아났다면 깜짝

놀라긴 하겠지만 전황을 바꿀수는 없겠

지요. 하지만 명성만으로 적군을 두려움

에 떠는 명장이라면 전황을 바꿀 수 

있겠죠. 비슷한 예로 대한민국이 낳은

최고의 명장 이순신 장군님 또한 이

사례에 해당한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때 사마중달이 얼마나 기겁을 했던지

수십리를 뒤도 안돌아본채 도망가면서 

"내목... 내목이 붙어있느냐?"라며 주위

에 물어보았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제갈

량에게 속은 걸 깨달은 사마의는 촉이 

후퇴한 뒤 제갈량이 설계한 촉의 진채를

보며 "제갈 공명은 참으로 천하의 기재

도다!"라며 감탄하였죠.

 

목 붙어있는거 하후패가 알려줌

 

6. 사후 

제갈량은 국궁진췌 사이후이만 한게 

아니라 본인이 죽은뒤의 촉나라까지도

걱정하였습니다. 촉의 1차 북벌 당시

위나라의 장수였던 강유는 제갈량의

전술을 완벽히 간파하여 천수군 태수

인 마준의 생명을 구합니다. 

 

제갈량은 다시한번 강유를 시험하기 

위해 촉나라의 대결전병기이자 전술

병기인 조자룡을 출격시켰지만 강유

는 직접 출격하여 조자룡과 일기토를

벌인뒤 쫓아버리는, 한마리도 지략과

용력을 모두 보여주지요.

 

제갈량은 그런 강유를 자신의 후계자

로 생각했고 제갈량은 위군을 선동

하여 강유를 배신자로 만들고 낙동강

오리알이 된 강유에게 임관을 권유

하여 강유를 얻게 됩니다. 이때 얻은

강유의 충성심이 얼마나 강했던지

강유는 촉의 멸망 이후에도 촉한을

재건하기 위해 반란을 주도할 정도

였지요.

 

강유를 비롯한 뉴페이스가 기존 명장을 이기는 것은 자연스럽게 전투력을 보여주는 나관중의 훌륭한 장치임.

 

그 외에 목우와 나무인형을 만들어서

자기가 죽은 것을 알면 분명히 쳐들어

올 사마의를 쫓아내기도 하였으며 

자신의 지식을 책으로 만들어서 강유

에게 전달하여 강유에게 도움을 주기

도 하였고 승상이었던 자신의 후계자로

장완과 비의를 지명하여 제갈량 사후 

생길 혼란을 최소화하였으며 유비가 

총애하였던... 제갈량이 반골의 상이라

하여 멀리하길 권했던 위연이 반란이

일으킬 경우 제압할 계책까지 알려주고

숨을 거두죠. 

 

실제로 위연은 제갈량 사후 모반을 하였

는데 제갈량은 죽기전 양의에게 지령이

담긴 주머니를 주고 숨을 거두었는데 

제갈량의 예언대로 위연은 마대와 양의

에게 붙어 반란을 재기하죠. 이때 양의는 

주머니에 적혀있는 대로 "누가 나를 죽이

겠느냐?"라고 세번만 말하면 군권을 넘겨

준다고 제안하였고 위연이 세번째 말하는

순간 제갈량에게 별도로 지령을 받았던

마대가 "내가 너를 죽이겠다!"라고 외치며

위연의 목을 베어버리죠.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죽어 그 시신이 

성도에 도착했을때 간신들에게 빠져있던

유선이 버선발로 뛰어나오며 제갈량의

관을 붙잡고 대성통곡을할 정도로 촉에서

제갈랑의 위상은 황제 이상이었습니다.

제갈량은 다음과 같이 유선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그놈의 관상ㅋㅋㅋ

 

"성도에 뽕나무 8백그루가 있고 메마른

땅이 15경 있으니 자제들이 입고 먹기엔

넉넉합니다. 신이 밖에서 임무를 받들땐

모두 관부에 의지했으므로 따로 생활에

방도를 차리게하여 적은양을 보태지 

않았습니다. 신이 죽었을때 여분의 재산

이 있어 폐하를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죽은 뒤에 보니 이 유언은 사실이었고 

제갈량의 청렴결백함 역시 빛을 발하였

습니다. 실제로 정군산에 있는 제갈량의

무덤은 훼손이 되지 않았는데 이는 공명

의 무덤은 다른 무덤과 달리 매장품이

없어서 도굴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죠.

이때 묘지안에 측백나무를 제갈량이 사망

당시 나이인 54그루를 심었다고 하는데

그 중 22그루가 현재까지 남아 중국인

들의 보물로 남아있다고 하죠.

 

아무튼 이런 사실에 유선은 크게 슬퍼

하며 나라 전체에 대사면령을 내리고

국장으로 장례식을 준비하였습니다. 당시

촉나라의 이막은 제갈량이 죽자 경축해야

한다고 유선에게 주장했는데요. 유선은

능력 여부와 별개로 심성이 매우 착한

사람으로 촉한에서는 혹형이 거의 없을

정도로 온건한 정치를 했던 황제였는데

제갈량의 죽음을 찬양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대노하며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

을 정도였습니다. 이후 유선은 제갈량

에게 무향후와 충무후의 시호를 내렸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제갈량의 방비 덕분에

촉나라는 제갈량 사후 18년 동안 촉한

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암군이었던 유선조차도 제갈량은 극진히 모셨음.

 

제갈량의 흑역사

읍참마속(泣斬馬謖)

강유가 촉나라에 임관하기 전 제갈량이

아끼던 원조 제갈량 키드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마속. 마속은 어려서부터

뛰어난 실력을 보여 성도령, 월준 태수

에 임명되었고 제갈량에게 절대적 신임

을 얻었지요.

 

유비가 죽기전 유비는 침소에서 제갈량과

마속에 대한 말을 합니다. 

유비: 승상은 마속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공명: 당세의 영재입니다.

유비: (침대에서 고개를 저으며) 짐이 볼땐

마속은 말이 능력을 과장하니 크게 쓸 인물

은 못되오. 승상이 이를 살펴 보시오.

 

제갈량은 유비사후 유비의 말을 무시한채

마속을 계속 중용합니다. 그러던 제갈량의

1차 북벌. 제갈량은 가장 중요한 요충지

였던 가정의 수비를 마속에게 명령합니다.

하지만 30대의 젊었던 마속은 부장이었던

왕평의 말을 무시하고 멀쩡한 밀을 놔두고

산위에 진을 칩니다. (등애와 함께 삼국지

최고의 등산가...)

 

인물은 제갈량보다 유비가 훨씬 잘봄.

 

이때 장합은 산을 둘러 마속을 포위한뒤

물을 끊어 촉나라의 병사들에게 물과 

식량이 가지 못하게 합니다. 결국 병사

들은 산속에서 괴롭게 죽고 마속과 몇몇

병사만 겨우겨우 도망치게 되었죠. 

마속이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인 가정을

잃게되자 제갈량은 전진해도 기점을

삼을 지형을 잃게되었고 그 여파로 

전선은 붕괴되어 완벽했던 제갈량의

1차 북벌은 완전한 실패로 돌아갑니다.

 

제갈량은 이 사실을 알게되자 즉시 철수

를 명했으나 사마의는 이를 놓치지 않고

맹렬하게 추격을 하는데요. 제갈량은 

양평관에 주둔한 뒤 위연에게 병사 1만

을 주어 사마의를 혼란에 빠트리기 위한

공격을 감행하라 명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꿰뚫고 있었던 사마의는 양평관

으로 진격하는데요. 이때 사마의의 군사

20만, 제갈량의 군사는 고작 5천이었죠.

 

좌절에 빠진 군사들에게 제갈량은 침착

하게 "내게 저들을 물리칠 방도가 있으

니 경거망동 하지마라!"라고 외치며 

병사들의 군복을 벗기고 성문을 열고

깃발을 내린 뒤 청소를 말끔히 했습니다.

그 뒤 병사들을 숨어있게 하고 제갈량은

학의와 청색 두건을 두른 뒤 성루에 홀로

앉아 향을 피우고 거문고를 쳤습니다.  

 

 

이윽고 사마의의 대군이 당도했고 사마의

는 홀로 자신을 향해 미소지으며 거문고

를 치고있는 제갈량을 보고 퇴각을 명령

합니다. 사마의의 둘째 아들 사마소는 

"적군이 얼마되지 않는데 왜 공격하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물었고 사마의는

"제갈량이 성문을 열고 기다리는 것은

우리가 성문 안으로 들어오라고 부추

기는 것이다. 그의 행동에는 다 계책이

있으니 그대로 들어갔다간 봉변을 당

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제갈량은 위군이 완전히 퇴각할떄 까지

미소를 짓다가 위군이 사라지자 이윽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무사히 철수를

하였고 제갈량을 피해 산속으로 도망친

사마의는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되자

땅을 치며 분통해 했다고 하지요. 이 

사례는 조운의 일신시담과 더불어 삼국

지 최고의 공성계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마속은 체포되어 성도에 잡혀왔습

니다. 제갈량은 제갈량 키드 후보자였던

마속의 위법에 슬피 울며 직접 마속을

참하였습니다. 이게 바로 읍참마속으로

법은 사사로운 정 없이 적용되어야 공정

하고 정확하게 적용된다는 뜻입니다.

제갈량이 눈물로 마속을 베어 다른 군사

들에게 사죄하니 당시 병사들은 엄격한

군율이 살아있었음을 느낄 수 밖에 없었

겠지요.

 

 

삼국지 조운 자룡 [촉]

이름 조운 (자: 자룡) 생몰 생년 미상 229년 사망 261년 순평후 추증 삼국지의 주인공 '카카로트', '루피', '나루토', '탄지로'처럼 만약 삼국지가 소년 만화였다면 주인공은 단연코 조운이었을 겁니

normalmister.tistory.com

▲ 일신시담이 궁금하다면??

 

마치며

바로 위 읍참마속 에피소드에서 볼 수 

있듯이 제갈량은 시시비비를 가리는데

있어 지연, 학연 또는 벼슬을 따지지 

않았으며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 공명

정대한 최고의 행정가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꼼꼼한 정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갈량이 죽었을때 촉나라

백성 그 누구 한명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자가 없었다고 할 정도이며, 당시

촉나라 황제 유선이 제갈량의 영향력

을 견제하기 위해 제갈량의 사당을

짓는 것을 반대하자 백성들이 자발

적으로 길가에 간이 사당을 만들어서

제갈량을 기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진삼국무쌍에서는 레이져 빔을 쏴서 '제갈건담'이란 별명이...

 

제갈량이 죽은 뒤 삼국지를 보는 사람

을 보고 이상한 사람 또는 변태라고 

하지요. 그만큼 제갈량은 유비와 조조

초창기 명장들이 없어진 이후 삼국지

를 홀로 끌고가는 최고의 캐릭터였습

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그래도 큰 키

와 잘생긴 얼굴 그리고 천재적인 능력

에 덧붙여 제갈량의 매력을 더욱 상승

시키기 위해 유비 생전 유비의 군공과

법정의 군공을 연의에서는 가로채기도

했지요.

 

하지만 삼국지연의 못지 않게 실제

정사의 제갈량 역시 후세에 존경을

받는게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대단했던 위인은 분명했던 것 같습

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제갈량을 

좋아하다보니, 그리고 제갈량에 관련

한 에피소드가 많다보니 오늘 글은

역대급으로 길어졌네요. 이상 삼국지

찐 주인공 제갈량이었습니다.

 

'특기'가 너프된 듯한 제갈공명. 진짜 못하는게 없음.

 

※ 본 게시물은 핸드폰 해상도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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