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조운 (자: 자룡)
생몰
생년 미상
229년 사망
261년 순평후 추증
삼국지의 주인공
'카카로트', '루피', '나루토', '탄지로'처럼
만약 삼국지가 소년 만화였다면 주인공은
단연코 조운이었을 겁니다. 강함은 삼국지
세계관 최강자 반열에 필적하고, 성격에
흠이 있었던 관우, 장비, 마초와 달리
열정적이고 정의로운 성격에 할배용사인
황충과는 달리 열혈 청년 이미지에도 딱
들어맞죠.
때문에 조운은 코에이의 아들이라는 소리
를 들으며 '삼국지'시리즈, '진삼국무쌍'
시리즈의 대표적인 주인공 격 캐릭터이죠.
일본 무장들을 다루는 게임인 '전국무쌍'과
콜라보레이션을 이루는 올스타전 격 게임
무쌍오로치에서도 '조조-오다 노부나가'
커플처럼 '사나다 유키무라'와 한데 묶이
기도 합니다. (캐릭터 디자인도 비슷)
조운은 하북 기주 상산사람으로 '리비아의
게롤트', '연인 장비'처럼 게임이나 각종
미디어에서 '상산 조자룡'으로 소개하는
경우가 많죠. 때문에 상산을 '자'로 이름
을 '자룡'으로 많이들 오해하신다고합니다.
아무튼 원소와 공손찬의 대립이 시작되던
시점 공손찬의 휘하로 들어가 활약하던
중 유비와 만나 유비의 인덕에 감복하여
유비의 부하가 됩니다.
큰 세력이나 기반이 없었던 유비 밑에서
말그대로 개고생을하며 촉나라의 건국
이후에도 유비 옆을 지켰던 촉나라의
대표적인 충신 중 한사람이죠. 연의에선
죽기전까지 전장을 누비며(제갈량에게
노동 착취를 당하며) 일평생 촉을 위해
살아온 인생에 흠이 없는 사람입니다.
조운의 전성기
1. 유비와의 만남
원소가 기주에 무혈입성하자 조운은 원소
의 됨됨이를 보고는 공손찬 휘하에 들어
갑니다. 공손찬군에서 조운은 기마대장
으로 활약하는데 이때 공손찬의 동문이
었던 유비가 공손찬에게 의탁하며 유비
와의 첫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조운은 스스로 꿈꾸던 완벽한 군주상이
었던 유비에게 빠져버리고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났던 유비 역시 조운에게 빠져
버리고 말았는데 동문 휘하의 사람을
빼내올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때
조운의 형이 죽게되고 조운은 이를
빌미로 고향에 돌아가게 됩니다.
유비는 조운이 귀향하는 이유가 공손찬을
떠나기 위함임을 직감하고 눈물로 마중
하였다고 하는데 조운은 애틋하게 유비의
손을 맞잡고 "끝내 덕을 져버리지 않겠
습니다." 라고 말한 뒤 고향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이후 조운은 유비가 원소에게 의탁하던
시절 유비와 재회하여 바로 유비의 휘하
에 들어갑니다. 유비는 당시 수족이던
의형제들 (관우,장비)와도 흩어져있던
말 그대로 형편없던 군주였음에도 불구
하고 유비 휘하로 들어간 것인데요.
조건과 환경을 따진게 아니라 유비에게
진심으로 감복하여 충성했다는게 느껴
지는 대목입니다.
2. 장판파
조운 인생의 하이라이트이자 삼국지연의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명장면
이죠. 유비가 유표에게 의탁할 때 유표가
세상을 떠나고 후계자 유종이 갑자기 조조
에게 항복을 하게됩니다. 조조와 적대 관계
를 유지하고 있던 유비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바로 피난을 가게 됩니다.
조조는 하루 100km를 주파한다는 호표기
부대를 급파하여 맹렬하게 뒤를 쫓았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피난 행렬에 10만여명
의 형주사람들이 유비에게 의탁하죠. 인의
를 중시했던 유비는 이들을 수용하여 같이
피난을 가지만 모두의 예상대로 피난 행렬
은 장판에 이를때쯤 조조의 부대에게 따라
잡히게 됩니다.
이때 유비는 처자식도 버리고 달아났고
조운은 갑자기 말머리를 돌려 조조군이
득실대는 북쪽으로 돌진하기 시작합니다.
이를 본 유비의 부하 미방은 유비에게
"조운이 조조에게 항복하러 갔습니다."
라고 유비에게 보고했고, 유비는 수극
을 던지며 "조운이 그럴리 없다!"라며
노했다고 합니다.
사실 조운은 향후 자신의 또다른 주인이
될 유비의 후계자인 '유선'을 구출하러
간 것입니다. 정사에서는 '유선'과 '감부인'
을 무사히 구출하고 유비에게 복귀하는데
성공하지만 당연히 삼국지는 연의가 국룰
아니겠습니까? 연의에서 조운은 민가를
탐색한 끝에 민가에 숨어있던 '감부인'과
'아두(유선)'을 찾게됩니다.
조운은 감부인에게 같이 돌아가자고 하였
으나 감부인은 아무리 조자룡이라 할지라
도 아두와 자신을 보호하며 유비에게 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여 아들인 유선 만
이라도 무사하길 바라며 조운을 따라가는
척 하다가 우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맙
니다.
조운이 주군의 아내를 지키지 못한 비통함
에 가득차 있을때 조조의 본대인 100만
대군에게 발각되고 맙니다. 조운은 아두를
포대기에 감싼뒤 화살이 맞지 않도록 등이
아닌 자신의 가슴에 묶은뒤 투구를 벗어
아두의 머리에 씌운뒤 대노하며 조조의
100만 대군을 돌파하기 시작합니다.
조운은 순식간에 조조의 부하 수십명을
도륙하며 무시무시한 위용을 뽐내는데
그러던 중 조조의 명검을 보관하던 장수
하우은을 만나게 됩니다. 이미 버서커
상태에 돌입한 조운은 상대가 장수건
병졸이건 일격에 죽여버렸고 이때 조운
은 죽은 하우은이 갖고 있던 조조의 명검
'청공검'을 얻게 됩니다.
조운은 조조의 대군을 돌파하면서 조조의
장군만 50명도 넘게 죽이는 괴력을 보여
주는데요 그러던 중 조운의 창이 낡아 부러
지자 창잽이었던 조운은 전리품으로얻은
청공검을 꺼내 싸우기 시작하고 동시에 죽은
적의 창을 빼앗아 마치 세븐나이츠 '아일린'
처럼 싸우기 시작하는데 이를 보고 '조자룡
헌 창(칼) 쓰듯 한다.'라는 속담이 나왔죠.
※ 조자룡 헌 창(칼) 쓰듯 하다.
조운이 장판에서 무기가 부러지면 적의
칼과 창을 빼앗아 맹활약을 한 것을 보고
만들어진 속담으로 자기 무기가 사라지면
남의 칼과 창을 마구 뺴앗아서 아낌없이
(헤프게) 쓴다는 뜻으로 자신의 권위로
남의 것을 마음대로 쓴다는 뜻 입니다.
결국 조운은 필마단기(匹馬單騎)로 조조
의 100만 대군을 뚫고 장비는 장판교를
끊으며 무사 귀환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유비는 아두가 죽었을까봐 걱정해놓고는
갑자기 냅다 아두를 바닥에 던지며 '이
아이 때문에 당신같은 장수를 잃을 뻔
했다.'는 대사를 날려줍니다.
총각때 너무 멋있어 보였던 장면이었죠.
자신의 아들보다 자기를 위해 목숨바친
장수를 치하한다는데 얼마나 멋진가요?
하지만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보니 미친
놈이 따로 없습니다. 아기는 무슨 죄라고
지가 무능해서 처자식도 버리고 온놈이
왜 아기를 던지는지.... 그리고 포대기에
감싸서 데리고 다닐 정도면 돌도 안지난
아이를 가슴높이에서 바닥에 던졌다는
건 1m 높이에서 자유낙하 했다는 건데
유비가 한 짓은 거의 살인이나 다름없는
행위입니다.
3. 한중공방전
유비의 형주 피난 이후 적벽대전에서는
유비의 곁에서 입촉에서는 제갈량과 함께
전장을 누볐습니다. 그리고 조자룡이 또
한번 빛나는 시기가 오는데요 바로 한중
공방전입니다. 물론 한중공방전의 주인공
이 황충인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연 못지 않은 조연이 있었으니
바로 '장합'을 격퇴한 장비와 조운이 되겠
습니다. 한중공방전에서 조운은 주인공
'황충'과 함께 작전을 종종 수행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황충은 적의 군량미를 탈취하기
위해 몰래 출정을 하였으나 계속 돌아오지
않자 조운은 황충이 죽었을까봐 걱정하여
경기병 수십기만 데리고 정찰을 나갑니다.
그때 조조의 대군과 맞닿드리게 되는데
조운은 이 상황에서 튀는게 아니라 오히려
맞서 싸우는 용력을 보여주는데요. 고작
수십기의 경기병을 데리고 게릴라 전을
펼치는데 가볍고 빠른 특성을 이용하여
치고빠지는 전술을 이용하여 적의 대형을
무너트려서 돌파에 성공합니다.
이때 아군 장수인 장저가 부상을 당하게
되는데 조운은 말을 돌려 장저를 구출하며
퇴각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이 후 조조군
은 조운을 잡기위해 추격을 감행합니다.
당시 면양을 지키던 장수 장익은 성문을
닫고 수비에 치중하려 하였으나 조운은
오히려 성문을 활짝열고 깃발을 내린뒤
북소리를 멈추게 하고 홀로 성문 앞에
서있었습니다.
조조군은 복병이 있을지 몰라 후퇴준비를
하였습니다. 허나 이는 조자룡의 공성계
로 조조군이 철수를 시작하자 북을 쉴세
없이 치면서 맹렬하게 조조군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너무 놀란 조조군은 자기
편끼리 서로 밟고 도주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적은 군사로 대승을 거두었
습니다.
다음날 유비가 조자룡의 진영에 도착하여
격전지를 둘러보고는 '자룡은 온몽이 담
덩어리구나!'라고 하며 감탄하였습니다.
이 것 이 바로 일신시담(一身是膽)의 유래
가 되었습니다.
▲ 공성계의 또다른 교과서인 제갈량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 공성계
아군이 열세일 때 방어하지 않는 것 처럼
꾸며 적을 혼란에 빠트리는 전략으로
중국의 명서 '손자병법'의 36계 중 32계
에 해당합니다. 삼국지에서는 제갈량과
조운이 효과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 일신시담(一身是膽)
온몸이 쓸개로 이루어져있다는 뜻으로
두려움을 모르는 담대한 사람을 비유
합니다. 조운이 적은 군사로 조조의 대군
을 폐퇴시킨 것에서 유래하였습니다.
4. 일기토의 제왕
삼국지의 그 어떤 장수도 조운과 일기토에
대해 비빌 장수가 없습니다. 물론 순도로
따지면 장비와 마초가 비빌수는 있겠습니
다만, 조운도 주창, 고람, 장합, 금환삼결,
등 수많은 장수를 이긴 삼국지의 다승왕
이었습니다.
특히 조운은 제갈량이 1차 북벌을 감행
할때 제갈량이 '이미 장군은 그 명성이
드높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명성이 흔들려 우리 군의 사기를 꺾게
될 것입니다.'라며 기용을 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너는 그동안 용맹하여 명성을
많이 쌓아 우리군의 히어로이지만 이제
늙었으니 괜히 전장에 나서 실수해서
우리 군 사기 꺽지 말라는 소리였죠.
이에 분개한 조운은 "지금 껏 싸움에
나서면 물러서지 않았고 적을 만나면
앞장섰습니다. 대장부가 싸움터에서
죽는 것 만한 행운이 어디있겠습니까?"
라고 말하며 선봉을 자처하는데요.
이는 제갈량이 조운의 전투력을 불태
우기 위한 계략으로 조자룡은 할배가
되어서도 적장 한덕과 그의 다섯아들
을 모두 베어버리는 노익장을 과시
하지요....
마치며
조운은 제갈량의 1차 북벌 이후 229년
사망합니다. 당시 대다수의 장수가 전장
또는 배신당해 죽는 것과 달리 조운은
자연사 하였는데요. 조운은 무엇보다도
노년에도 용맹함이 전혀 녹쓸지 않았고
성품까지 훌륭하여 배신당하지 않았기
때문인 듯 합니다. (촉나라의 구출 담당
119였으니까요.)
사실 연의에서 조자룡은 깔 구석이
없습니다. 능력, 성품 모두 우수하기
때문인데요. 오히려 조운은 후세에서
후손들에의해 만들어진 영화에서 오히려
너프를 먹게 되는 흑역사가 만들어 지는
데요.... 물론 연의에서 조운이 터무니
없어서 영화화가 되기 힘들긴합니다만....
연의에서 일격에 도륙했던 하후은을
겨우 이긴다든지 조운의 옛 전우들의
용력을 조운이 감당하지 못한다던지
왜 멋진 지네들 위인을 저렇게 너프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오호대장군으로 촉한의 기둥
이었고 정사에서는 사방 장군에 들지
못했지만 정남 장군에 임명되어 그 공을
인정받았던 장수로 관우, 장비, 마초의
인성 문제 속에서 그리고 너무 적은
사료로 데이터가 적은 황충 사이에서
더욱 빛났던 촉의 장수 조운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 본 게시물은 핸드폰 해상도를 기준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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