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장료 (자: 문원)
생몰
169년 출생
222년 사망
위나라의 관우 장료
장료는 본래 '장'씨가 아닌 '섭'씨로 장료
의 조상인 '섭일'이 한무제때 흉노족을
성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거짓 투항을하여
흉노족의 원한을 사는 바람에 성씨를
'장'씨로 바꾸어버립니다. 어려서부터
용맹함이 남달라 별탈없이 임관에 성공
합니다.
하지만 당시 한나라의 황제는 허수아비
였고 동탁이 세력을 잡게되자 자연스레
동탁 군에 편입되고 동탁 사후 여포를
따르며 여포의 맹장으로 활약합니다.
그러던 하비 공방전에서 조조에게 패배
하며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조조에게
되려 스카웃 당하며 조조를 위해 충성
을 다하게 되지요.
결국 장료는 오호양장이라 불리는 위
나라 최고의 명장 반열 중 필두에 올라
대오전선을 완벽히 제압하며 최고의
명장이자 나라의 영웅으로 후한 대접
을 받으며 눈을 감지요.
장료의 전성기
1. 하비 공방전
장료 팬분들은 왜 조조에게 패배한 하비
공방전을 장료의 전성기라 칭하냐는 분
들도 계실텐데 하비 공방전이야 말로
장료의 데뷔를 알린 전쟁으로 빼놓을
분량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 처럼 장료는 어려서부터 용력이
뛰어나 한나라에 쉽게 임관하였습니다.
당연히 대장군이었던 하진 휘하에 있다가
하진이 죽고 동탁이 장악한 후 동탁군에
편입됩니다. 동탁도 양아들이었던 통수왕
여포에게 살해당하자 장료는 자연스레
여포를 따르게되는데요. 여포 휘하의
명장들이었던 팔건장의 리더로써 쌈박질
빼고는 잘하는게 없었던 여포의 오른팔
로써 여포군의 중심으로 활약합니다.
하지만 하비 공방전에서 조조에게 패배
한 장료는 여포와 함께 사로잡혀 조조
에게 끌려갔는데요. 당시 여포는 조조
에게 자기는 기병 지휘를 잘한다며
조조에게 끝까지 살려달라고 애원했지
만 장료는 그런 여포를 보며 주군임에도
"여포공 그대도 장수라면 더이상 구차
한 모습을 보이지 말고 죽음을 떳떳히
받아들이시오!"라고 꾸짖습니다.
이를 놀라히 여긴 조조는 유비의 조언
을 들어 여포를 먼저 사형에 처하고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장료를
주의깊게 관찰하게 되고, 같은 항장
출신으로 장료와 친분이 있었던 남친
관우가 장료를 추천함으로서 조조
휘하로 들어가게 됩니다. 비록 패배
하였지만 장료의 절개를 보여주는
명장면 되겠습니다.
▲ 장료 친구 고나우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2. 창희 토벌
장료가 하후연과 서주에서 항전중인
창희를 토벌할 때였습니다. 당시 조조군
은 군량이 소진되어가자 회군 하려하였
습니다. 하지만 당시 장료는 회군에
반대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몇일
동안 포위한 곳을 순찰할때 마다 창희
와 눈이 마주쳤는데 화살을 쏘는 경우
가 매우 드물었소. 이는 필히 창희의
마음이 흔들리기 때문이오. 내가 직접
그와 얘기하여 그를 투항하고자 하오."
장료는 사자를보내 성 아래에서 접견
을 하자고 통보하고 창희와 단둘이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이때 장료는
"우리 주군은 무용이 뛰어날 뿐더러
덕이 많으시니 먼저 귀부하는 순서
대로 큰 상을 받을 것이오." (원조
피라미드 위나라)
결국 창희는 투항의사를 밝혔고 장료는
단신으로 창희의집에 찾아가 창희의
처자식에게 극진히 예를 갖추어 대하니
창희는 매우 감복하여 장료와 함께
조조에게 가서 투항합니다. 조조는
기뻐하며 창희를 돌려보내고 장료와
단둘이 남자 "이는 대장의 법이 아니오!"
라며 장료를 꾸짗게 됩니다.
이는 장료와 같이 조조군에서 중요한
대장이 단신으로 움직여서 지가 완성
에서 그랬던 것 처럼 위험에 처할까봐
했던 말으로 장료는 사죄하며 "명공
(조조)의 위엄과 신망이 사해에 떨치고
있으니 창희가 감히 임금의 뜻을 받드
는 저를 해치지 못하리라 생각하여
그리 행동하였습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비록 조조에게 혼났을지언정 조조군은
장료의 혜안으로 군량과 병사만 소비
하고 회군할 뻔할 전투를 더이상의
유혈사태 없이 승리한 사례로 장료의
외교 능력과 사리 분별 능력을 볼 수
있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3. 진란 토벌
여강의 진란이 반란을 일으키자 장료는
또다른 오자양장인 장합과 진란의 난
을 제압하기 위해 투입됩니다. 당시
우금과 장패는 작전에 동시 투입되어
매성을 공격하였는데 매성은 우금에게
거짓 투항하여 우금이 회군하자 마자
진란에게 합류합니다.
또한 장료가 진란에게 가기 위한 길은
산길으로 길이 매우 험한데다가 적의
병력은 아군에 비해 상당히 많은 수준
이었죠. 도저히 답이 안보이는 상황이라
부하들은 "병사도 적고 길이 험해 진군
이 어렵습니다!"라며 지극히 현실적이고
명쾌한 보고를 하였으나 장료는 "이는
일대일의 싸움으로 용맹한자라면 가히
전진할만 하오!"라며 직접 군을 이끌고
진격합니다.
장료의 말마따다 적의 세력이 아무리
많다한들 좁은 길목에 전부 포진할
수 없으니 장료는 이를 간파하고 돌격
한 것인데요. 장료는 고지를 점령해야
하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끝내 적들을
물리치고 본거지에 침투하여 진란과
매성의 머리를 베고 작전에 성공하죠.
이는 조조가 직접 "진란과 매성을 죽인
것은 장료의 공이다."라고 언급하 정도
로 용맹한 행동이었습니다.
4. 합비 공방전
장료 인생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조조가
손권을 정벌한 뒤 장료를 보내 악진,
이전과 병사 7천을 주어 합비에 주둔
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서신을 주어
손권이 쳐들어오면 읽어보라고 합니다.
마침 손권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합비를
포위하자 장군들은 서신을 열어보았고
조조는 "손권이 오면 장료, 이전 장군은
출전하고 악진 장군은 수비하고 설제는
싸움에 참여하지 마시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장료는 이 서신을 보자마자 이전과 선제
공격을 감행하여 적의 예기를 꺽어 군심
을 안정시키기 위함임을 알아차리고
다른 장수들에게 말하였지만 위나라의
오자양장은 지들끼리 사이가 안 좋았기에
장료가 말을해도 눈치만 볼 뿐 이었습니다.
보다 못한 장료는 "장군들은 성에 남아
계시오. 나 혼자라도 나가서 죽기로 싸우
겠소!"라고 말했고 이전은 "이것은 국가
의 일이니 어찌 사사로운 원한으로 공의
를 돌아보지 않겠소? 저도 그대를 따라서
나갈 것이오!"라고 하며 결의를 다졌다고
합니다.
그날 저녁 장료는 최정예 인원 800명을
뽑아 소를 잡아 먹인뒤 동틀 무렵 선두
에 서서 손권의 본진에 맹렬히 돌격합
니다. 장료는 직접 수십명의 병졸을 죽이
고 2명의 장수를 베고 자신의 이름을
크게 외친뒤 손권의 대장기 바로 아래
까지 돌격한뒤 손권 욕을 하며 싸우자고
하였으나 장료의 기세가 매우 무서워
손권은 차마 나서지 못했습니다.
이때 오나라 장수들은 장료의 병사가
적은 것을 확인하고는 포위하여 공격
할 셈이었는데 이를 간파한 장료는 말을
몰아 빠르게 퇴각합니다. 이때 포위를
뚫지 못한 병사들이 장료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장료는 다시 오나라의 포위
망안으로 돌격해 이들을 구출하는 용력
까지 보여줍니다.
손권은 감히 다시 공격하지 못하고
병사를 수습하는 사이 합비의 방어는
완고해졌고 오나라는 10일간 맹공을
퍼부었으나 합비를 함락시키지 못하
였고 이내 퇴각하게 됩니다. 장료는
이를 놓치지 않고 퇴각하는 오군에게
맹공을 쏟아붙는데 손권조차 손에
무기를 쥐고 싸울 정도로 맹렬했고
결국 오나라는 대부분의 병사를 잃고
장수들만 겨우 퇴각할 정도로 패배
하게됩니다.
전장이 정리되자 손권의 얼굴을 몰랐
던 장료는 항복한 장수들에게 "아까보니
자줏빛 수염을 가진 장수가 있었는데
상체는 길고 하체는 짧은데 말을 잘
타고 활을 잘쏘던데 대체 그게 누구요?"
라고 물었고 오나라 병사들이 "그게
바로 손권(손제리)입니다."라고 하자
악진과 장료는 바로 뛰쳐나가 추격
했지만 결국 손권을 놓쳤다고 하는
일화도 있죠.
조조는 장료를 정동장군에 임명하여
크게 치하했고 장료는 대오전 결전병기
로 입지를 다지게 됩니다. 조조 사후
장료는 병에 걸리게 되고 당시 황제
였던 싸이코패스조비는 직접 장료의
병세를 확인하고 임금의 옷을 하사할
뿐더러 장료의 음식도 보내 쾌유에
힘썻을 뿐더러 오를 격파할 때 장료의
생각도 물을 정도로 장료를 신경썼다고
하지요. 이때 장료의 답변이 얼마나
명쾌 했던지 조비는 "이 사람이 또한
옛적의 소호(삼황오제 중 한사람)로구나"
라며 극찬했다고 합니다.
손권은 위나라의 혼란한 상황을 틈타
위나라를 다시 한번 공략했을때도(동구
전투) 조비가 급하게 병세가 어느정도
회복된 장료와 조휴를 대오전선에 투입
하자 손권은 "장료가 아무리 병들었어도
쉽게 상대할 수 없으니 신중히 대처하시오."
라고 말했다고 하죠. 장료는 병든 상태
에서도 여범을 격파하며 오나라 담당
센세(참교육)의 위용을 보여줍니다.
장료는 오나라와의 전쟁도중 조비를 구하
려다가 정봉이 쏜 화살을 맞았고 결국
전쟁이 끝난 후 상처가 깊어져 사망하고
말지요. 조비는 눈물을 흘리며 관내후의
직위를 올리며 직접 조서를 내렸다고
하고 이런 장료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강동에서는 료래료래라는 말이있을
정도지요.
※ 료래료래
'장료가왔다.'라는 뜻으로 장료 사후 400년
이 지난 당나라 시대에도 강동의 아이들은
료래료래라는 말만 들어도 울음을 그칠
정도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는 기록입니다.
마치며
위나라 장수들은 삼국지 연의에서 역적
또는 조조를 도와 악행을 일삼는 나쁜
장수들로 나오는데 장료는 연의에서조차
깔 수 가 없었는지 그 용맹함과 충성심
이 그대로 편찬됩니다.
삼국지 연의의 주인공 나라인 촉나라에
대입하면 딱 관우와 맞아 떨어지는데요.
적군을 가리지 않는 용맹함과 조조와
조비를 향한 충성심 그리고 친구가 없는
것 까지 똑같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상 위나라의 관우 장료였습니다.
※ 본 게시물은 핸드폰 해상도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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