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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삼국지 서황 공명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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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서황 (자: 공명)

출생 알 수 없음

사망 227년

 

위나라의 명장 서황

앞선 장료 편에서 말했듯이 나관중의 삼국지

연의에서는 위나라가 최종 빌런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위나라 장수들은 군공이 축약

되거나 (지는 역할로 나옴. 즉, Jobber) 인성

이 더러운 사람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서황은 위나라에서 가장 용맹한

오자양장의 한 사람으로 앞서 설명한 장료

와 마찬가지로 굴욕 없는 삶을 살다 간 또

다른 용장인데요. 그럼 양봉의 장수에서

부터 위나라의 오자양장이자 무패의 장수

로 우뚝 선 서황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용감하지만 생각이 짧아 조조를 의심하지 않은 양봉. 

 

서황의 전성기

낙양 피난

서황은 관우와 같은 하동군 출생으로 도적

출신의 장수였던 양봉의 휘하에 들어가 

도적을 토벌하며 군공을 세워 정부로부터

신임을 얻게 됩니다. 그러던 중 동탁이 죽고

이각과 곽사가 장안에서 난을 일으키고

폭정을 일삼자 보다 못한 서황은 한나라에

대한 충성심으로 양봉을 설득하여 낙양으로

피난을 주도합니다.

 

서황은 용맹한 무예로 이각과 곽사가 보낸

추격대를 물리치며 황제를 모시고 낙양으로

피난에 성공하는데 가는 내내 동승이 도적

출신이었던 장수 한섬에게 시비를 거는 바람

에 매일 다툼이 끊이질 않았다고 합니다. 

낙양에 도착한 서황 일행은 당시 최고의 

군벌이었던 원소에게 의탁을 시도하나 거절

당했고 서황이 조조를 추천하여 황제는

조조에게 의탁하게 됩니다.

 

하지만 지난번에 소개했던 대로 조조는

한나라에 대한 충의로 헌제를 옹립한 것이

아니라 자기 세력의 확대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함이었고 조조는 헌제를 독점

하기 위해 계략을 써서 양봉을 쫓아버리죠.

이에 양봉은 조조에게 반발하여 일어나지만

조조의 위력에 도리어 토벌되고 말지요.

이때 서황은 투항하여 조조의 휘하에 들어

옵니다.

 

 

삼국지 조조 맹덕 [위]

이름 조조 (자: 맹덕) 생몰 155년 출생 196년 사공 부임 208년 승상 부임 213년 위공 부임 216년 위왕 등극 220년 사망 삼국지의 금수저 조조 '치세에 능신, 희대에 간웅'이라 불린 조조 는 한나라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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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조가 헌제를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면?

 

대원소군 결전 병기

조조 휘하에 들어온 뒤 하북쟁패를 위한

대전투였던 관도대전이 일어납니다. 

이때 서황은 직접 원소의 명장이었던

안량과 문추를 격파하는 군공을 세우는

것뿐만 아니라 관도대치 때에는 위나라

최고의 지략가 중 한 명이었던 순유의 

지목으로 직접 원소의 치중대를 기습

하여 적의 사기를 꺾는 맹활약을 합니다.

 

이때 서황은 가장 많은 공을 세워 도정후

에 봉해졌다고 하니 서황은 조조 휘하로

들어가자마자 삼국지에서 가장 큰 전투

중 하나인 관도대전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인데요. 오소 습격에 큰 공을 세웠던

또 다른 오자양장 악진과 함께 관도대전의

진정한 주인공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서황덕에 목숨건진 한범

 

원소 사후 원소 세력이 분열된 틈을 타서

한범이 거짓 투항을 하고 우주 방어를

하자 서황은 어차피 항전을 해봤자 

서로 피만 볼 뿐 승패는 결정되어있으니

미리 항복하는 게 좋은 게 아니냐는 서신

을 화살에 매달아 성안으로 날려버렸고

이를 본 한범은 바로 서황에게 항복했다

고 했죠.

 

하지만 한범은 이미 한차례 거짓 투항을

한 상태이기에 군주였던 조조는 결단을

내릴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황은

'역양을 멸한다면 다른 성들은 모두 죽음

을 각오하고 항전을 할 것이니 원컨대

주군께서 역양의 항복을 받아주시어 다른

성들에게 보이신다면 모두 공을 우러러 

볼 것입니다.'라는 말을 하고 조조는 이를

옳다고 여겨 이를 따랐다고 하니 단순히

전투만 뛰어난 게 아니라 시국을 파악하는

능력까지 뛰어났던 서공명이었습니다.

 

 

삼국지 관우 운장 [촉]

이름 관우 (자: 운장) 이력 162년 출생 (추정) 219년 맥성 사망 1096년 현열왕 추존 1578년 협천호국충의대제(황제) 추존 암울했던 초창기 삼국지 최강의 무기 중 하나인 청룡언월도 (82근, 49 kg)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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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황을 대형으로 모신 관우가 궁금하다면?ㅋㅋ

 

번성 공방전

당시 촉나라의 명장 관우의 어마어마한

전투력에 번성 공방전에서 위나라가 

크게 고전하자 조조는 무패의 장수 서황

을 파견하여 조인을 도와 관우에게 반격

을 명합니다. 하지만 서황이 도착한 시점

에서 이미 번성이 물에 잠겨 위군들과

방덕은 관우에게 토벌당하고 우금은 

투항한 상태였죠.

 

당시 백두혈통이었던 조인은 번성에

포위당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서황도 관우와 

직접적으로 대결을 할 수 없었기에

일단 피신하여 관우를 견제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조조는 서상과 여건을 서황

에게 붙여주었고 서황은 맹렬히 관우의

포위망에 돌입하여 조인을 구출합니다.

 

이때 서황 군은 얼마나 용맹했던지 서황

이 돌아올 때 조조가 직접 7리밖에 마중

나와서 서황을 맞이하였고 '번성과 양양

을 보전한 것은 모두 서황 장군의 공이오'

라며 서황을 치켜세우며 큰 연회를 배풀

었다고 합니다. 조조는 '내 30년간 전장을

누볐고 옛적에 용병을 잘하는 자들의 이야

기를 들어왔지만 적의 포위망에 말을 몰아

돌격한 자는 없었소. 장군의 공은 손무나

사마양저를 뛰어넘는 것 같소.'라며 엄청

난 극찬을 합니다.

 

조인: 난 수성하나는 자신있어~

 

또한 당시 번성 공방전은 위나라의 중요한

전투로서 위나라 여러 명장들의 군사가 

집결한 전투였으므로 위나라 군영에는

여러 장수들의 군사들이 주둔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때 위나라의 군주가 직접

당도하니 병사들은 조조를 보기 위해 

군진을 이탈하며 어수선한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서황의 군영은 진에 머물며

함부로 움직이지 않아 조조가 또 한 번

서황의 통솔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서황은 요즘으로 치면 지독한 

워커홀릭 상사 그 자체였는데요. 오죽

하면 위나라 병사들이 제일 기피하는

장수 1위가 바로 서황이었습니다. 이

참에 서황 장군의 무패 비결에 대해 

분석해본다면 크게 2가지를 들 수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엄격한 통솔력.

두 번째는 첩보의 중요성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서황은 평소 엄격

한 통솔력을 보였는데요. 실제로 남에게

엄격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성정

이 검약했으며 수시로 바뀌는 전황에 따라

병사들은 신속하게 진두지휘했는데 얼마나

신속하게 움직였는지 병사들은 밥 먹을 틈

도 없었고 한 병사가 '서황 장군의 휘하에

있으면 밥 먹을 시간도 없다.'라고 투덜댔습

니다. 이를 지켜본 서황은 '이놈들아 내가

너희들의 솥단지 라도 깨부쉈더냐?'라며

껄껄 웃었다고 합니다. 

 

세계사 최고의 명장 중 한사람인 한니발

 

그 옛날 세계 최고의 명장이었던 한니발

은 병사 대부분이 용병이었는데도 불구

하고 낮잠시간에 한니발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서 병기를 조심히 다루고 살살

움직였다는 기록을 보면 조직력이 중요한

전장에서 병사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리더십, 통솔력이야 말로 명장의 조건 중

최우선적인 능력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첩보의 중요성인데요. 

서황은 그 어떤 장수보다 신중한 장수

였습니다. 군을 이끌 때는 늘 멀리까지

정찰하여 전황을 파악하였고 이길 수 

있는 싸움인지 이기지 못하는 싸움인지

파악하여 이길 수 있는 싸움이라면 신속

하게 군을 이끌고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추격하여 격퇴했고 이기지 못하는 싸움

일 경우 잠시 물러나 전투를 피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서황은 지금으로부터 1800년

전부터 수색부대의 중요성을 그 누구

보다 잘 알고 있었고 이를 통해 신중

하게 군을 움직이는 악비와 같은 모습

을 보여준 명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명?군? 조조 ㅋ

 

서황은 서주 대학살과 여백사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조조를 명군 주라고 여겨

사사로운 명예를 좇을 생각을 하지 않고

오직 공을 세우기 위해 노력했으며 평소

검소한 성격대로 죽기 직전 유언 또한

'아직 전중이니 장례는 평상복으로 염

을 하거라' 라며 끝까지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죠.

 

사실 서황의 죽음에도 연의와 정사가

갈리는데 정사의 내용대로라면 그냥

자연사하였고, 연의에서는 삼국지 

최고의 스파이였던 (촉→위→촉) 맹달

을 토벌하다가 맹달의 눈먼 화살에 

맞아 전장에서 전사하지요. 

 

서황의 흑역사

나관중

서황의 흑역사는 바로 나관중입니다. 즉

삼국지연의가 흑역사죠. 아무 군공도 없는

패전 처리용 장수 하후돈은 애꾸눈이라는

설정을 버릴 수 없어 호전적인 용장으로

만들어 주고 한 황실을 위해 헌신했던

조절은 조조의 악랄함을 더하기 위해 한

패거리를 만드는 등 나관중은 소설의 완성도

를 위해서라면 국적을 따지지 않고 버프와

너프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하필 서황은 너프 대상자 명단에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조조 휘하에서 안량과 문추를

격퇴시켰던 서황은 전투력 측정기로 변신

하여 안량과의 일기토에서 20합만에 패배

하고 문추와의 일기토에서는 30합 동안

승부를 내지 못하다가 결국 도망쳤지요.

 

또한 위에 적지는 않았지만 한중공방전

때에도 별동대를 운용하여 촉의 병사들

을 산과 계곡에 투신하게 만들 정도로 

용맹함을 떨쳤고 하후연 사망 후 조조를

보좌하여 안전하게 피신한 공을 세웠음

에도 불구하고 왕평 탓을 하며 대패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죽는 것도 

기여코 화살을 맞혀서 죽이는 전개를 

보여줍니다. 

 

'대부'라는 도끼를 휘두르는 서황. 코에이 게임에서는 우에스기 겐신과 모델링이 겹친다.

마치며 

서황은 한편으로는 직장상사로 만나기

싫지만 한편으로는 그 무엇보다 모시고

싶은 상사였을 겁니다. 밑에 있자니 옆

부서 동기보다 개고생 하는 게 눈에 뻔히

보이기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도 심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뛰어난 판단력과 통솔력으로 연전

연승하는 리더 밑에서 있다 보면 이 또한

버티는데 원동력이 될 수 있지 않나 생각

해봅니다. 아마 서황이야 말로 이 시대가

원하는 최고의 팀장 상이 아닐까요?ㅋㅋ

 

삼국지10에서의 서황 통솔이 너무 낮은듯합니다.

 

아무튼 촉의 오호대장군을 마치고 위의

오자양장을 얘기하는데 촉나라의 많은

분량에 비해 오자양장은 좀 많이 빈약한

감이 있어요. 물론 서황, 장료, 우금은

제외지만 악진은 정말 자료가 적고 장합

은 뭔가 사료는 많지만 할 말이 없는 장수

랄까...

 

이런 상황이라 저는 위나라 장수하면 료래

료래 장료와 서황 그리고 호후 허저를 가장

좋아합니다. 그래서 악진과 장합은 다루지

않고, 전위는 조조 편에서 많이 다뤘으니까

허저까지만 다루고 책사로 넘어가야겠네요.

그럼 여기까지 오자양장의 일원인 위나라

명장 서황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 본 게시물은 핸드폰 해상도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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