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물

삼국지 유비 현덕 [촉]

반응형

이름
유비 (자: 현덕)

이력
162년 탁군 출생
219년 한중왕
221년 촉한 소열황제
223년 사망 (백제성)

현대에서 바라보는 유비

대한민국 어쩌면 일본에서도 가장 유명
중국인 아닐까 하는 인물이 누굴까요?
저는 삼국지의 유비와 조조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유비는 나라를 건국하긴
했지만 삼국을 통일하지도, 후계자(유선)
에게 큰 기반을 닦아주지도 못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비가 이렇게까지
인기있는 인물이 이유는 시점에서
우리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군주상이기
때문이며 가문은 좋았지만 가난했었던
수저 출신으로 모진 역경 끝에 황제에
자리에 앉았다는 때문인 같습니다.

그럼 한나라 말기 처첨했던 백성들을
태평성대로 이끌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군(仁君)
유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매력쟁이로 과소평가된 유비의 게임 능력치

파란만장한 유비의 일대기

일본에서는 조선의 침략자이자 나쁜 놈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있다면 중국에서는
돗자리를 짜며 살다가 어떠한 정치적,
군사적 기반 없이 나라를 건국한 유비 현덕
대표적인 입지전적 인물이라 있죠.
유비는 한나라 중상정왕의 후예로서 그의
할아버지는 헌령까지 지냈던 사람으로,
지방에서는 망명이 높았던 집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비의 아버지 '유홍' 일찍 유명을
달리하며 가세는 급격히 기울기 시작하여,
유비는 어머니와 돗자리와 짚신을 짜면서
살았습니다. 다만, 집안 자체는 몰락하지
않았는지 유년시절엔 삼촌의 도움으로 당시
유명한 학자였던 '노식'에게 가르침을 받을
있었죠. 여담으로 유비는 노식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동문인 '공손찬' 친분을
쌓게 되었습니다.

가업을 이어 돗짜리를 짜시는 60대 후손 유창씨


만인지적이라 불리우는 삼국지 최고의
아우들과 황건적의 , 동탁토벌 등에서
세워 수월하게 공을 세우는가 하더니,
여포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유표, 조조에게
의탁도 하는 끊임없이 도망치고 버티며
꾸준히 기회를 노린 끝에 결국 촉한의 초대
황제에 자리 오르게 되지요.

코에이의 삼국지 게임을 해보신 분들이시
라면 다들 아실겁니다. 적벽대전 이전 군웅
할거 시대의 유비를 선택하여 천하통일
하는 것이 극악의 난이도라는 걸요. 그렇게
밑바닥에서 미약한 세력으로 시작해 황제의
자리까지 오른 유비야 말로 존버를 삶으로
입증한 인간 승리 대명사가 아닐까요?

유비로부터 유래한 말들

1. 도원결의 (桃園結義)
뜻이 맞는 사람끼리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같이 행동할 것을 약속 .

아니 저때 탁군엔 뭔일이 있었기에 저 괴수들이 한자리에...


한나라 말. 혼란의 시기를 틈타 장각은 두
동생들과 함께 '창천(파란 하늘) 이미
죽었으니, 황천이 서리라'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황색 띠를 두른 신흥 종교 도적떼
형성하여 전국 각지에서 백성들을 약탈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고통받는 백성들을 안타
까워하며 탄식하다가 장비, 관우와 만나
유비의 복숭아 동산에서 의형제를 맺게
되는데 여기에서 나온 말이 도원결의입니다.

관우와 장비는 병사 만명과 맞먹는다는
'만인지적'의 장수로 삼국지 최고의 용장들
인데요. 축구로치면 프로팀을 창단했는데
공격수로 메시와 호날두가 최저임금 받고
뛰어주는 느낌이랄까요? 이런 장수들을
데리고 체계적이지도 않았던 황건적을
그야말로 쓸어버리는 공을 세우며 유비
삼형제는 인망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2. 비육지탄(髀肉之嘆)
할일이 없어 넓적 다리에 살만 찌는 것을
한탄한다는 뜻으로, 재능을 발휘할 때를
얻지 못해 헛되이 세월만 보내는 것을 한탄함.

저도 지금 비육지탄 합니다 ㅠㅠ


유비는 도겸, 여포와 엮이며 여러 고난을
겪은 후 조조의 눈에 띄게 됩니다. 조조는
유비에게 좌장군의 벼슬을 주며 칭찬했는
데요. 이는 정말로 유비가 좋아서 벼슬을
준 것이 아니라 조조가 유비의 잠재력을
꿰뚫어 보고 자기가 감시할 수 있는 곁에
두어 잠룡의 발을 묶어두기 위한 신의
한수였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간파하고 있었던 유비는
결국 조조에게 벗어나 형주에 있는 유표
에게 의탁하여 신야라는 작은 성에서 4년
동안 허송세월하게 됩니다. 어느날 유표와
같이한 술자리에서 유비는 갑자가 화장실
에 갔다가 펑펑 울면서 자리에 돌아오게
됩니다. 유표는 깜짝놀라 유비에게 왜
울었는지 물었고 유비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죠.

"제가 젊은 시절엔 안장에서 떠나지
않아 넓적다리에 살이 붙을 수가 없었
는데, 이젠 말을 타지 않아 살이 붙었
습니다. 머지않아 나이가 들어 늙어갈
텐데 아무런 공도 세우질 못해 그게
매우 슬펐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게 유비는 인의와
눈물로 장군들을 감동시켜 부하빨로 천하
를 얻은 이미지가 강하지만 유비는 사실
지휘관으로 수많은 병사와 장수들을 통솔
했던 전장의 총 지휘관이었습니다.


3.
삼고초려(三顧草廬)
초가집을 세번 방문한다는 뜻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이 자존심과 지위를 내려 놓고
지위가 낮은 사람을 얻기위해 하는 행동을
뜻합니다.

3번이 아니라 30번 찾아갔어도 아깝지 않을 인물


유비가 유표에 의탁하던 중 우연히 서서를
얻게 되나 서서는 곧 조조에게 떠나게되고
서서의 천거로 제갈량을 알게됩니다. 유비는
조직의 우두머리였는데도 불구하고 여러
사정으로 인해 만나지 못했던 제갈량을
3번이나 방문하는 정성을 보여 재야에
머물러 있었던 제갈량을 감동시켜 등용한
일화입니다.

이후 제갈량은 이리저리 휘둘리며 제대로
뜻을 펴지 못했던 유비에게 천하삼분지계를
설명하며 일국의 군주로서 자립하도록, 유비
사후에는 촉을 지탱하는 든든한 국가의 기둥
으로 충성을 다하게 됩니다.

삼국지 제갈량 공명 [촉]

이름 제갈량 (자: 공명) 생몰 181년 출생 234년 사망 진정한 삼국지의 주인공 지난 조운을 다룰때 삼국지가 소년 만화 라고 하면 주인공은 바로 조운이라고 말씀드렸었지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본

normalmister.tistory.com

▲ 촉나라 최고의 인재 제갈량이 궁금하다면?

4. 수어지교(水魚之交)
매우 친밀하게 사귀어 헤어질 없는 사이

제갈량에서 시작된 유비의 침실 우정


제갈량을 얻은 후 유비는 제갈량과 식사는
물론 잠도 같은 방에서 잘 정도로 각별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에 유비의 초기시절
부터 함께해온 관우, 장비가 이를 서운하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둘의 불만이 표면화
되자 유비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동생들을
꾸짖었습니다.

"내가 공명을 얻은 것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니, 아우는 아무말 말라!"

물고기는 당연히 물을 떠나면 살 수 없기에
필수불가결한 존재임을 뜻합니다. 이 뜻을
이해한 동생들은 더 이상 불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유비의 전성기

1. 강릉 대탈주 작전
조조에게서 탈출한 유비는 유표에게 의탁
하여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갈량을 얻는 등 나름 내실을
다지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식객에 불과했죠.
그러던 중 유표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그의 차남 유종이 후계자로 추대되었습니다,
그러나 평상시 유비를 경계하던 유종이 칼
같이 조조에게 항복해버리자 최전방에서
조조와 얼굴을 맞대고 있던 유비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립니다.

따라서 제갈량은 재빨리 군을 정비하여 유종
을 치고 형주를 차지한 뒤 잔존 세력을 규합
하여 조조에게 대항하자고 진언하였지만
대의와 민심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유비는
이를 거절합니다. 결국 가장 좋은 차선책은
바로 최대한 빨리 조조의 손길이 닿지 않는
강릉으로 피난하는 것 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조조는 하루에 100km를 주파한다는 호표기
부대를 급파하였습니다.

민심과 함께한 유비의 인생


유비는 한시라도 빨리 피난을 가야했지만
조조에게 복종하기 싫었던 10만여명의
형주 사람들이 유비에게 의탁합니다.
유비의 부하 장수들은 일분일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피난민들과 같이 이동한다면
피난 속도가 늦추어지기 때문에 이를 극구
만류하였지만 유비는 다음과 같이 말했고
부하들은 순순히 백성들을 지키며 같이
피난길에 오르게 됩니다.

"무릇 큰일을 이루는 데는 반드시 인심을
근본으로 해야한다.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귀부하는데 어찌 내가
이들을 버릴 수 있겠는가?"

결국 조조에 선봉대에 추월당하게 된 유비
세력은 큰 위기를 맞이했지만 말도 안되는
부하 장수들의 탈인간급 능력으로 안전히
도주에 성공합니다. 이게 얼마나 말이
되는 일이었냐면, 유비가 강릉에 무사히
들어다는 보고를 받은 조조는 들고있던
붓을 떨어트릴 정도의 대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세계사에서 손꼽히는 대전 중 하나인 적벽대전이 일어났던 장소


2. 적벽대전
관도대전 이후 하북과 중원을 평정한 조조
에게 더이상 적수는 없었습니다. 조조의
다음 타겟은 동오에서 큰 세력을 영위하고
있었던 손오였지요. 쫄보쟁이들이 몰려있는
손오는 이미 바짝 쫄아서 항전파와 항복파
나뉘어 다투고 있었던 실정이었죠.

그러나 유비는 이에 굴하지 않고 제갈량을
파견하여 오나라 여론을 바꾼 뒤 오나라의
대도독 주유와 연합하여 조조군을 몰살하고
결국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를 이루는 초석
이 되게 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하듯이 유비가 없었다면
삼국지는 삼국지가 아니라 조조의 위나라
건국지가 되었을 겁니다.

양국 최고 활잡이들의 대결이었던 한중공방전

삼국지 황충 한숙 [촉]

이름 황충 (자: 한숙) 이력 생년 불명 220년 사망 전형적인 대기만성형 장수 황충의 생년이 정확하게 나타난 사서는 없지만 관우가 노병이라고 칭한 것을 보면 아무래도 관우보다 나이가 많을 수

normalmister.tistory.com

▲ 한중공방전의 주인공 황충이 궁금하다면?

3. 한중공방전
유비가 유장군을 몰아내고 파촉을 얻은
뒤 바로 치뤘던 전투입니다. 지리적으로
한중이란 지역이 갖는 의미는 바로 장안
을 거쳐 조조가 있는 낙양까지 다이렉트
관통할 수 있는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
였습니다. 따라서 양국은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최정예군을 움직여 전쟁을 치뤘고
이에 한중공방전은 의도치 않게 촉과 위의
올스타전이 되버렸습니다.

위나라에서는 위나라 최고의 장수라 불린
하후연과 대촉전 에이스 장합, 호치라 불리
우며 두려움의 상징이 된 허저, 대부로 유명
한 서황 등의 라인업을 내세웠습니다.
나라에서는 만인지적 장비, 촉나라 최고의
책사 법정, 조조 담당 일진 마초, 일신시담
조운, 배신의 아이콘 위연 그리고 한중공방
전의 주인공인 버서커 황충 등이 참여했지요.

이 전투는 치열한 공방 끝에 촉나라의 승리
끝을 맺는데요. 무엇보다 이 전투야말로
유비 인생 최고의 하이라이트라 볼 수 있습
니다. 유비는 평생을 조조의 휘하에 있거
조조와 대립하고, 조조에게 도망치며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유비는 결국 한고조 유방
거병했던 땅에서 조조군을 몰아내고
나라 황실의 역적이었던 조조의 목 바로
아래 칼을 들이민 것과 다름없는 승리였기
때문이죠.

한중공방전의 승리고 촉한은 북벌의 길목을
확보했으며, 유비는 한중왕을 자칭하며 국가
체계도 안정화 시켰습니다.

이후 한중왕에 오르는 유비


4. 사람을 보는 혜안과 리더쉽
유비는 따뜻한 인품과 더불어 부하의 마음을
움직이는 리더쉽과 특히 사람을 꿰뚫어보는
혜안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먼저 유비가
좌장군으로 조조 휘하에 있을 당시 모두가
유비를 신경쓰고 있지 않았습니다. 허나
유비는 조조가 자신을 감시하는 것을 알았고
조조와 함께한 술자리에서 갑작스럽게 천둥
번개가 치자 겁쟁이 행세를하며 술상 아래
에서 벌벌 떠는 연기를 하였습니다.

조조는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그동안 유비
를 나와 같은 영웅으로 보았으나 내가 사람
을 잘못본 것 같다며 방심을 하게 되죠.
유비는 이를 틈타 조조에게 병력을 빌려
조조에게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유비는 일개 병졸에 불과했던 위연의
능력을 간파하여 한중태수로 말도 안되는
승진을 시켰던 전례가 있습니다. 이런 파격
승진에 장비는 반발했지만 위연이 일어나
좌중이 감탄할만한 식견을 뽐냈고 장비는
순순히 파서태수에 부임할 정도로 위연의
능력은 출중했다고 하죠.

진 한번 잘못쳐서 2천년 동안 까인 마속


또 평소에 오만했던 관우와 장비. 두 아우
에게는 성격을 고치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나 두 아우는 결국 그 성격을 고치지
못하고, 그 안하무인과 과격한 성격 탓에
사망하게되죠. 이 뿐만 아니라 젊은 나이에
뛰어난 실력을 보여 제갈량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어 성도령, 월준 태수에 오른
마속을 보고 임종 직전에 다음과 같이
제갈량에게 조언을 하죠.

"마속은 말이 실제를 과장하니, 크게
기용할 없소. 그대가 이를 살펴보시오."

결국 유비의 말을 듣지 않은 제갈량은 향후
마속 때문에 1차 북벌이 실패로 돌아갔던
전례가 있을 정도로 사람을보는 눈이 뛰어
났으며 이는 적재적소에 부하를 배치하는
촉나라의 장점이 되었습니다.

유비의 흑역사

1. 장유 참수
유비가 입촉하여 유장과 대면한 자리에서
장유와 만나게 됩니다. 이때 장유는 유비가
수염이 없다는 걸 보고 비꼬는 듯 유비를
놀리게 되죠. 뿐만 아니라 장유는 훗날
익주를 잃을 것이란 저주에 가까운 예언을
하자 유비는 제갈량의 만류에도 "향기나는
난초라도 문앞에 나있으면 베어버릴 수
밖에 없소."라고 말한 뒤 장유를 참수해
버립니다.

물론 과거시대에 군주앞에서 저런 망발을
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 할 수있는데요.
유비의 행동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라
고 할 수 있지만 저는 이 행동이 향후 유비는
물론 촉의 쇠퇴에도 영향이 있는 '이릉대전'
의 시발점이라 생각합니다. 그말인 즉, 국가
적인 이득을 위하여 감정을 좀 숙일수도
있어야 하는데 유비가 황제라는 감투를 쓰고
난 뒤엔 자제력이 좀 부족한 것 같아요. 갱년
기가 좀 늦게 왔나?

수염이 좀 얌생이 수염같긴함.


2. 이릉대전
촉의 팬들조차 도저히 쉴드를 칠 수 없는
유비 최악의 전투. 동생 관우가 오나라에
의해 목숨을 잃자 이에 분개한 장비 역시
무리하게 전쟁을 준비하다 죽게 됩니다.
이미 멘탈이 붕괴된 유비는 지금은 손오
와 손을잡고 위나라에 대항할때라는 제갈
량과 조운의 충언도 무시한채 손오와
대립하게 됩니다.

아무리 적벽대전, 한중공방전으로 세력이
약해졌다 한들 위나라가 압도적인 강대국
이었기 때문에 촉나라와 오나라의 전쟁은
위나라에게 유리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노에 사로잡힌 유비는 촉나라 대다수의
반대 의견과 손오의 화친 제의도 무시한
채 직접 진의 설치부터 도맡아 60만 대군을
이끌고 오나라에 쳐 들어갑니다.

허나 사리분별을 할 수 없었던 유비가 설계
한 진은 엉망친창이었습니다. 이를 보고 위
나라의 황제였던 조비는 "병법의 기본도
모르는 자로다."라며 유비를 디스했고, 유비
의 개입사실을 몰랐던 제갈 량은 진을 보곤
"누가 이런 진을 짰는가? 이런 진을 설계한
사람은 당장 참수해버려야 한다!"라고 화를
내기도 하였지요.

또다른 수많은 희생자가 나왔던 중국 이릉

이릉대전은 오나라의 천재 육손의 데뷔전
이었습니다. 이런 엉망인 지휘를 육손이
놓치지 않고 화공으로 참고육을 시전합니다.
이에 촉나라는 불길이 칠백리에 달했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대패를 당하게 됩니다.
안그래도 몇안되는 뛰어난 인재에 의존하는
빈약한 인재풀을 지녔던 촉나라는 이릉전투
를 통해 천재모사 마량, 익주를 지키는 황권,
선봉군 풍습, 장남, 사마가 등을 잃게 되었고
수십만의 병력도 잃게됩니다.

결국 초대 군주 유비도 목숨만 겨우 건져
백제성 으로 후퇴하는데요. 이때 본인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제갈량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깁니다.

"승상의 재능은 조비의 열배에 달하니 필히
나라를 안정시키고 대사를 완성할 있을
것이오. 만약 아들이 보좌할만 하면 보좌
하시고, 만일 아이가 그만한 재능 있지
않다면 승상이 직접 취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아들 유선에게는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깁니다.
"착한일은 작다고 아니하면 안되고, 나쁜일
작다고하면 안된다. 오직 어질고 덕이
있어야 다른 사람을 따르게 있다.
아비는 덕이 부족하니 나를 받지 마라."

이렇게 유비는 유선과 제갈량 등 핵심 인물
에게 유언을 남기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때 유비에게 크게 감복한 제갈량은 유비로
인해 패망 직전이었던 나라를 무려 10년만에
태평성대로 만들어 놓았으며 죽을때까지
유선을 들어 모시게 됩니다.

유비 관우 자아아앙비 천하의 무적일세~

마치며

한족은 흔히 중국의 자존심이라고들 합니다.
제가 봤을때 유비는 한의 초대황제이자
유비의 조상인 한고조 유방보다 더 뛰어난
군주의 자질을 지닌 천재적인 군주였습니다.
모든 면에서 다 뛰어났으나 단 하나, 결정
적인 순간에서도 부하의 충언을 가려 듣고
실행하는 안목이 모자랐다고 생각합니다.

순간의 판단에 이성을 잃고 부하의 조언도
귀담아 듣지 않아 결국 파국에 이르렀죠.
물론 라이벌이 조조인 점도 유방에 비해
난이도가 높아진 요인이기도 하겠지만요.
유비의 인생을 돌이켜보면 인의를 거스
르기도 하고, 배신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죽을때까지 올곧은 신념을 가지고 부하는
물론 백성들의 민심을 얻어왔던 유비야
말로 현대에도 가장 필요한 지도자 상
이라고 생각합니다.

※ 본 게시물은 핸드폰 해상도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눈물과 포용력에 묻힌 지휘관으로써의 유비의 모습
반응형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국지 조운 자룡 [촉]  (0) 2021.06.08
삼국지 마초 맹기 [촉]  (2) 2021.06.02
삼국지 황충 한숙 [촉]  (0) 2021.05.27
삼국지 장비 익덕 [촉]  (0) 2021.05.14
삼국지 관우 운장 [촉]  (0) 2021.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