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관우 (자: 운장)
이력
162년 출생 (추정)
219년 맥성 사망
1096년 현열왕 추존
1578년 협천호국충의대제(황제) 추존
암울했던 초창기
삼국지 최강의 무기 중 하나인 청룡언월도
(82근, 49 kg)와 하루에 천리(392km)를
간다는 적토마, 9천 장신의 건장한 체격과
대추처럼 붉은 얼굴, 황제에게 미염공이란
별명까지 얻은 삼국지의 마스코트 중 하나
인 관우는 후한말 하동군 출생의 사람으로
정확한 생년은 찾을 수 없습니다. 다만,
연의에서는 162년을 생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동군에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훈장을
했다가 탁군으로 도망쳤다고 하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소금으로 밀매를 하다가 적발되서 야반
도주 했다거나 아니면 부패한 관리를
혼내다 실수로 죽였다거나 하는 몇가지
설이 있지요.
탁군에서 흉흉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유비와 장비와 찾아가서 도원결의를
맺음으로 관우의 전설은 시작됩니다.
황건적의 난 등에서 맹활약으로 유비
의 왼팔, 오른팔인 관우와 장비는 만인
지적(萬人之敵)이라는 말을 듣게됩니다.
만인지적(萬人之敵)
상대 세력인 조조의 참모 정욱이 관우와
장비를 설명하기를 '능히 만인을 적을 대
적 할 수 있는 맹장'이라 표현한데 유래한
말로 만 명의 사람을 대적할 만한 지략과
용맹이 있는 사람을 비유한 말입니다.
중국 최고의 명장으로
200년엔 유비가 조조에게 반기를 들게
되는데 인재풀도 작고 세력도 조조에
비해 약했던 중소기업 같았던 세력인지
라 유비는 대패하여 세력이 전부 와해
되고 관우는 조조에게 사로잡혀 항복하게
됩니다.
다들 아는 것 처럼 조조는 관우의 열성 팬
이었습니다. 조조를 만나기 전 부터 용맹함
이 중국 대륙을 호령했고 조조는 의리와
용맹함, 통솔력까지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하지만 관우는 유비의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에 관우가 공을 세울 틈을 주지
않아 계속 잡아 두었습니다. 하지만 관우는
관도대전에서 조조 세력에서 큰 공을 세우
며 유비에게 돌아가게 되지요.
이후 형주 피난때엔 관우가 배를 끌고
오는 동시 작전에 투입되어 유비의 피난
을 성공적으로 인도하기도 하였고, 적벽
대전 이후서쪽으로는 익주, 동쪽으로는
양주, 북쪽으로는 사주를 모두 바라볼 수
있는 삼국에 엄청난 중요성을 갖는 요충
지인 형주 수비라는 큰 임무를 맡게되지요.
그동안 관우는 적의 퇴로를 차단하는
매우 위험한 역할을 자처했는데요.
적의 후방에서 움직여야 하는 특수부대
같은 특성상 움직임이 간파되어 적의 매복
이라도 있다면 앞뒤로 공격을 받아 전멸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관우는 항상 사선에서 적들을
격퇴하며 이미 용맹함이 정평이 나
있기도 했으며, 관우는 촉나라에서도
수군 사용에 능하여 형주 수비를 맡을
수 있는 적임자였을 것입니다.
이후 관우는 유비의 바램대로 번성을
공격하여 우금을 생포하고 위나라의
명장 방덕을 참수하는 등의 공을 세웠
으나 치밀하게 전쟁을 준비한 손권군
의 여몽, 부하 미방과 부사인의 배신
으로 오나라에게 패배하여 최후를
맞게 되지요.
신이된 남자
관우 사후 왕에도 황제에도 추존되었으나
도교에서는 관우를 신격화하여 군신 '관성
제군'이라 부르며 따릅니다. 생전 군신으로
의 모습 외에 인의를 중시하여 의리의 신
으로도 불리기도 하고요. 의외로 재물 및
상업의 신으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상업이
라는게 사람과 사람간의 의리가 중요하고요.
그리고 예전에 교류를 하기위해서는 요즘
처럼 애플리케이션 주문하는게 아니라 대면
교류를 해야했기 때문에 이동 과정에서
맹수와 산적, 강도들로 부터 군신 관우가
지켜준다고 믿었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신이 되었지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온 한국에서도
관우는 신으로 분류가 되는데요. 물론
대중들이 그러하는 것은 아니고 무속인
(무당)에 한합니다. 보통 관우 등 오호
대장군과 촉의 명장들은 전내신으로
최영 장군 같은 신들은 장군신으로
모신다고 하지요.
관우의 전성기
1. 관도 대전
관우는 중국 최고의 명장 중 한사람으로
지금까지도 용맹함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으나 의외로 촉 나라의 올스타전인
한중공방전, 형주 피난에 대한 에피소드
가 없는데요. 관우는 엄청난 기개로 보통
단독 세력을 꾸려 별개로 움직이거나
관우의 레전설이 젊었던 초반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젊은 시절에 이런
일화들이 나오는게 사실적이죠.)
관도대전은 지금의 관우를 있게한 관우
의 데뷔 무대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조조 휘하에서 형수님 (유비 아내)들과
극진한 대접을 받기만하며 공을 세울
기회를 주지 않아 하염없이 세월만 흐를
때였습니다. 삼국지 최대 사건 중 하나인
원소와 조조의 관도 대전에서 조조는
원소의 강력한 세력앞에 크게 고전 중
이었지요.
특히 원소의 명장 안량을 필두로 그 기세
가 무시무시했던 원소군은 삼국지 최고
의 전략가 중 한명인 순유마저도 지금은
대적할 수 없으니 적의 병력을 분산시키고
기습하자고 진언할 정도였습니다. 아무튼
당시 너무 강력한 안량군에 의해 연진에서
포위당해 어쩌지 못하고 있었던 조조는
크게 고심하고 있었는데요.
그때 조조 곁에 있었던 관우가 출전의사를
내비치고, 조조는 관우가 공을 세우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딱히 방도가 없었기에
관우를 전장에 참가시키죠. 관우는 안량의
대장기가 휘날리는 지점으로 재빨리 달려
가서 적군을 뚫고 안량의 목을 순식간에
참수하고 수급을 챙겨서 돌아오죠.
이 말인즉 수급을 챙길동안 관우는 무방비
상태였다는 건데 안량이 초살 당하는 걸 본
병사들은 감히 관우에게 덤빌 생각을 하지
못한채 관우가 유유히 전장을 빠져나가는걸
지켜보기만 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경위는
다를지라도 안량과 관우의 일기토 그리고
관우가 안량의 목을 벤 사실은 정사에도
기록된 사실 중 하나입니다.
얼마나 관우의 위세가 대단했던지 안량의
죽음으로 원소군의 포위는 풀렸고 이를 본
조조가 직접 황제에게 표를 올려 관우에게
'한수정후'라는 벼슬을 내려 줄 정도였죠.
이 외 안량과 마찬가지로 문추까지 죽여
원소 필두의 용장 2명을 베어버리는 무시
무시한 용력을 보여주죠....
참고로 조조는 관우가 투항하자마자 편장군
이라는 벼슬을 주었는데 이 벼슬은 조조가
장료, 서황, 악진을 얻었을때도 주지 않은
벼슬입니다. 향 후에 공을 세웠을때나 줬죠.
조조가 투항하는 장수에게 편장군 벼슬을
준 것은 장합이 유일한데 장합도 원소군
에서 전향하기 전에 이미 조조군에 가담하여
공을 세우고 받은 것이니 조조가 얼마나
관우를 높게 평가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 관우의 사생팬 조조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2. 오관 육참
관도대전에서 관우의 활약은 실로 엄청났
습니다. 당시 원소 휘하에 있었던 유비는
관우의 활약으로 관우가 죽지 않고 조조
휘하에 있다는 걸 알게될 정도였습니다.
유비는 바로 관우에게 자기의 상태를
알렸고 관우는 이를 확인하자 마자 조조
에게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조조는 관우가 자기를 찾아온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미 꿰뚫고 있었
기에 몇일동안을 만나주지 않습니다. 이에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관우는 서신으로
조조에게 감사함과 형님꼐 돌아갈 수 밖에
없음을 전하고 형수님을 마차에 태운 뒤
유비에게 떠나갑니다.
이 때 조조는 급히 말을 달려 관우에게
따라갔고 조조는 관우를 잡을 수 없음을
알았지만 따뜻한 내 외투라도 입고가라며
외투를 관우에게 건네죠. 하지만 관우는
말에서 내릴 수 없다며 말 위에서 청룡
언월도의 끝면으로 외투를 건네 받고
작별합니다.
정사에서는 조조는 이후 '그는 각기 자신의
주인을 위한 것이니 뒤쫓지 말라.'고 명령
하여 연인이나 다름 없었던 관우를 유비
에게 잘 보내줍니다. 하지만 연의에서는
이벤트가 또 발생하지요. 관우가 유비에게
가기 위해서는 5개의 관문을 거쳐야 했는데
관문을 수비하던 장수들이 조조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관우의 앞을 가로 막은
것이지요.
관우는 순식간에 관문을 돌파하며 6명의
장수를 베어버립니다. 진삼국무쌍에서는
마지막 관문까지 뚫으면 하후돈이 등장
해서 '관우 아무리 너라도 맹덕의 패도를
막게 내버려 둘수는 없다!'라고 하면서
전투가 시작되죠. 전투에서 이기면 조조가
보내주라고 해서 그냥 관우는 갈길가는
걸로 표현됩니다.
아무튼 관우의 복귀는 관우와 조조의
우정과 조조의 마음이 돋보이는 장면
인데 연의에서는 관우를 부각시키는
바람에 조조가 관우를 무력으로라도
잡으려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더이상
모양빠지기 전에 보내주는 소인배
처럼 나와버리는 참사가 발생했죠.
3. 번성 공방전
관우가 죽는 해였던 219년 촉은 익주
를 차지하며 한중공방전 또한 승리하는
등 사기가 하늘을 찌를 기세였습니다.
당시 위나라 최고의 장수 조인은 번성
에서 관우 토벌을 위한 계략을 준비
하고 있었지요.
만약 한중에 이어 번성에서까지 촉에
패배하게 된다면 전장의 패권은 촉에
넘어가는게 불보듯 뻔할 양상이었죠.
따라서 서황, 우금, 조인, 만총, 방덕
등 수많은 명장들이 관우를 잡기위해
총 출동합니다. 하지만 삼국지 최고의
명장 중 한명인 관우의 위세는 엄청나
조인이 성에 틀어박혀 나오기도 힘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번성 공방전은 관우와 특히
방덕을 위한 독무대로 방덕의 조조를
위한 절개가 묻어나는 방덕의 마지막
전장이었습니다. 방덕은 관우에 이마
에 활을 맞추는 등 죽을힘을 다해
관우에게 맞섰습니다.
싸움은 장기화되고 장마철이되었습니다.
진삼국무쌍에서는 관우가 이걸 다 고려
해서 수공을 펼치는 것으로 멋지게 그려
지지만 실제로는 홍수가 나서 번성 안에
있던 위군들이 물살에 휩쓸렸다고 합니다.
당시 수군을 가지고 있던 관우는 배 위
에서 편안하게 뭍으로 올라오던 위군들을
도륙했습니다. 예비역들은 다들 아시겠
지만 전투에서 고지를 점령하여 고지에서
싸우는 것 만큼 유리한 것은 없습니다.
방덕은 끝까지 싸우고 버텼지만 결국 체력
과 무기가 소진되어 더 이상 싸우지 못
하고 이에 반한 관우가 전향을 요구했지만
혈귀한테 제안받은 렌고쿠마냥 조조에
대한 충성심과 촉에 대한 욕설을 퍼부었고
결국 참수되고 맙니다.
이 때 관우또한 독이 묻은 화살이 어께에
박히게 되어 삼국지연의 최고의 명의 '화타'
가 직접 집도를 해주는데 마취가 없던 시대
에 살을 절개하고 뼈를 긁어내는 수술인대도
불구하고 관우는 아들과 바둑에 집중하고
편안하게 만담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 많은
장수들과 화타를 놀라게 했죠. (랭크전이었나?)
4. 단 한번의 패배도 없는 괴물
여기서 말씀드린 패배란 병사와 하는
전쟁이 아닌 일기토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즉, 관우는 연의 기준 수십번
의 일기토에서 비긴적은 있어도 한번도
져본적이 없습니다.
특히 관우가 대단한점은 보통 일기토
승률이 높은 장수들은 명망이 낮은
장수들과 매치업이되어 승수가 높은
경우가 태반인데 우리 상남자 관우
앞에 명망이란 그저 미사여구일 뿐이었죠.
안량, 문추 등 원소의 명장들을 참살하고
특히 반동탁 연합군으로 있을때 동탁군의
명장 화웅과의 일전에서는 '술이 식기전에
돌아오겠소.'라는 한마디를 남기곤 바로
출격하여 실제로 술이식기 전에 화웅의
수급을 가지고 돌아와 조조가 한눈에
반하게 되기도 했죠.
하후돈과는 오관육참 당시 쬬때문에 비기고
방덕과 번성 전투에서 이마에 활을 맞는
접전을 펼치며 비기는 등 장비에게 비할바는
못되지만 관우는 삼국지 최고의 무사 중
하나였습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일화는 황충과의
일기토인데요. 둘 다 극강의 실력으로
쉽사리 승부가 나지 않는데요. 관우가
일부러 거짓 퇴각을 반복하자 람보르
기니 급 적토마에 비해 늙고 부실했던
황충이 말이 그만 넘어지고 맙니다.
(도대체 적토마는 몇살까지 사는 건가?
진짜 휘발유를 먹이로 주는 말인가?)
관우는 황충을 죽일 수 있음에도 말을
바꿔 타고 오라고 예우를 갖추어 말하고
다음날 다시 승부를 보게 되는데 이번엔
황충이 거짓으로 퇴각을합니다. 엄청난
말의 성능으로 관우가 바짝 따라잡자
황충은 일부러 기다렸다가 관우에게 활
을 쏘게됩니다.
황충 역시 관우를 죽일수 있음에도 태수
가 위에서 보고 있으니 빈시위만 당기다
마지막에 일부러 투구 정수리에 화살을
꽃아 관우를 죽이지 않은 건데요. 황충
의 진심을 알게된 관우는 바로 퇴각
하지요. (근데 왜 황충의 후장군 승진을
반대했을까? 갈대같은 소녀 마음 관우)
▲ 관우를 들었다 놓은 노장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관우의 흑역사
1. 변태 관우
여포가 패퇴하기 전에 관우는 진의록의 부인
'두 씨'가 미인이라는 정보를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군인이 아무리 다른 군주
밑에 있었다고는 하지만 전장에서 미녀
정보나 캐고다니고....
아무튼 관우는 조조에게 꼭 두씨를 자기에게
달라고 애걸복걸 요청하게됩니다. 조조는
금은보화에도 꿈쩍하지 않던 놈이 왜 이렇게
난리인가 생각하여 일단 관우에겐 준다하고
두씨를 직접 두눈으로 확인하게됩니다.
하지만 관우는 몰랐죠. 조조가 중국 최고
의 유부녀 킬러인줄은..... 조조는 두씨의
외모를 보곤 한눈에 반해버립니다. 이에
관우는 자기가 결혼은 했으나 아직 아내
에게 자식이 없다고 호소하지만 미인
유부녀를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조조는 약속을 취소하고 자기의 첩으로
삼아버립니다.
이 내용은 관우의 군신으로서의 이미지가
묻혀 연의에서는 삭제되었습니다만 '화양
국지'에서 기록된 내용입니다. 당시 여성
인권은 특히 전장에서 미녀는 전리품 취급
을 받았기 때문에 인권이 없다싶이 하였죠.
인덕으로 유명한 유비역시 후퇴할때 지 몸
은 챙겨도 아내는 2번 이상 내팽겨치고
지 혼자 도망갈 정도니까요. 전장에서
적세력 군주의 아내가 잡히면 어떤 취급
을 받을지 뻔히 알텐데도 당시엔 그정도로
여성에 대한 취급이 좋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당시 전장에서 미인을 탐하는 관우
의 요청은 당연한 것일 수 도 있습니다.
근데 그 요청을 왜 유비한테 하는 것도
아니고 지가 모시지 않겠다고 선언한
조조한테 하는지... 실제로 이것 때매
삐져서 조조가 관우를 잡지 못했다는
썰도 있을 정도입니다.
2. 삐돌이와 무개념 사이
참고로 관우는 영웅호걸들에겐 인의를
중시하는 명장으로 후대에서도 많은
인기를 끌었지만 실제로 지 직장에서는
좋게 말하면 삐돌이 나쁘게 말하면
무개념 그 자체였습니다. 즉, 그릇이
너무 작았고 이기적이었죠.
1) 수어지교 사건
일단 제갈량 같은 인재가 영입되어 주군인
유비와 같은 침실을 쓸정도가 되면 삐쳐서
유비한테 우리는 개국공신인데 왜 쟤만
이뻐하냐며 실토한적도 있었죠. 유비편
에서 다뤘지만 연의에서는 제갈량이
신출귀몰한 전략으로 자신의 역량을
입증해서 관우와 장비가 납득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유비가 수어지교를
예시로 들며 딱 잘라 말하며 다그치죠.
뭐 여기까지는 애교로 볼수 있습니다.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정도니까요.
(하지만 이 사람은 의리의 신으로 추앙
받는 사람인데...?)
2) 적벽대전 사건
적벽대전때 제갈량이 천재적인 두뇌로
조조의 예상 대피동선까지 파악하여 누굴
매복시킬지 정하고 있을때 관우가 자원합니다.
제갈량은 관우가 예전에 조조에게 공덕
을 입은 사실을 알고있어 이를 거절하였
으나 관우가 전장에서는 그런거 없다며
자길 내보내 달라고 떼를 쓰죠.
결국 관우가 매복을 담당하였고 제갈량의
예상대로 적벽에서 대패한 조조는 관우가
지키는 길목으로 도주를 합니다. 관우와
만난 조조는 옛 정을 생각하자며 자기를
살려달라고 하자 관우는 적국의 군주인
조조를 그냥 보내줍니다.
나중에 이를 들키긴 하지만 사장(군주)와
특수관계(형제)인 관계로 야단만 맞는선
에서 끝납니다. 이는 관우의 인의를 보여
주는 에피소드이지만 이건 철저히 관우가
군신으로서 기본이 안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관우가 아닌 일반 백부장이 조조의 도피
동선에서 그냥 조조를 보내줬다고 하면
그 사람 목은 남아나겠습니까? 군법은
둘째 치더라도 임무를 일부러 포기하는
군인은 군인도 아닙니다. 특히 맡기 싫어
하는걸 맡긴 것도 아니고 지가 한다고
했는데 그냥 보내준 것을 보면 이적 행위
로 추궁 받아도 할말이 없을 정도입니다.
3) 마초 사건
서량의 풍운아 '금마초' 마초가 촉한에
귀순했을때의 일입니다. 마초는 이미
중국 대륙에서 명망이 높은 네임드였고
관우는 제갈량에게 몰래 마초가 어떤
사람인지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제갈량은 '마초는 문무를 겸비한
호걸로 장비랑은 비교할 수 있지만 우리
미염공 형님한테는 안되죠.'라는 답변을
받고 크게 기뻐하며 빈객들에게 이를
자랑했다고합니다. 한참 어린 마초보다
자기가 낫다고 아들뻘인 제갈량에게 칭찬
받은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다니는
소주잔만한 그릇을 보여줍니다.
참고로 관우는 훈장 출신으로 사서삼경
을 마스터한 엘리트였습니다. 때문에
용장임에도 불구하고 게임내에서 지력
포인트가 60~70점대를 유지하고 있죠.
하지만 당시 인의예지신을 필두로하는
공자의 유교 사상도 퍼져있는 시대에
관우는 21세기 트위터 급 폭언을 하고
다니는 시대를 앞서간 용장이었습니다.
4) 황충 사건
촉한이 건국되고 한중공방전을 승리로
장식하자 유비는 관우, 장비, 마초, 조운
그리고 한중공방전에서 위나라 최고의
명장 하후연을 참살한 황충을 '오호대장군'
으로 임명하려하였습니다.
하지만 관우의 성격을 파악하고 있던 제갈
량은 황충의 명망은 관우, 마초와 동등하지
않아 멀리(형주)있는 관우는 이를 반기기
않을꺼라 말했습니다. 하지만 유비는
자기가 달래겠다고 관우에게 관내후라는
직위를 추가로 하사합니다.
하지만 소주잔 관우는 격분하여 '대장부는
평생 노병과 같은 대열에 있지 않는다!'
라며 관직을 거부합니다. 아니 명에 살고
명에 죽는 군인에 인의로 유명하신 관우
형님이 자기 군주가 주는 관직을 삐져서
거부하다니.... 진짜 회사였으면 당장
모가지였을텐데....
아무튼 이렇게 관우의 속좁은 면면까지
꿰뚫어본 유비는 후에 '간의대부'까지
오른 비시를 보내 '황충이 공을세워서
벼슬을 줘야하는데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어떻해요. 어차피 이는 일시적인
공로에 근거한 것일뿐이고 어차피 주군
마음속의 센터는 와타나베 마유 관우님
아니겠어요?'라고 엄청난 통변을 펼처
관우가 찍소리도 못하고 임명을 받게
되죠. (인의도 충의도 없는 관우.....)
5) 관우의 저주
사실을 말하자면 관우의 탓은 아니지만
너무 소름이 돋으므로 대표적인 피해자
몇명만 말씀드리겠습니다.
1) 1번 피해자: 여몽
여몽은 형주를 차지한 직후 전쟁의 1등
공신으로 가장 먼저 손권에게 술잔을
받게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관우의 혼이
여몽에게 들어오더니 "네 이놈들! 내가
누군줄 아느냐!? 바로 한중왕의 동생
형주목 관우 운장이다!"라고 술잔을
집어 던지더니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
에서 피를 뿜고 죽어버립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연의의 이야기고 실제론
지병이 악화되어 관우와 같은 해에 죽게
되죠. 근데 또 모르죠. 관우 귀신 때문에
지병이 악화되었는지도.
2) 제 2,3의 피해자: 유비와 장비
장비는 관우의 복수전을 준비하다가
죽게되고, 유비는 관우의 복수전을
치르다가 본인은 물론 촉한의 미래
마저 죽여놓고 말지요.
3) 제 4의 피해자: 만력제
어느날 중국 명나라 제 13대 황제인
만력제가 꿈을 꾸는데 꿈속에서 관우가
나타나 만력제에게 "형님께서는 지금
만력제로 태어나셨고, 조선의 왕 선조가
바로 장비의 환생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날 이후 만력제는 본인이 유비의 환생
이라고 믿었고 전생의 동생(선조)가 힘들
어 하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임진왜란을
겪고 있는 조선에 엄청나게 지원을 하며
조선을 도왔습니다. 이는 중국 내에서도
만력제를 '조선황제'라는 별명을 붙여
부를 정도로 자국의 이익이 아닌 조선의
이익만을 챙기는 모습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 만력제는 직접 조서
와 함께 4천 금의 건립 기금까지 보내 전생
동생 (선조)에게 너가 직접 관우의 묘를
건립하라고 지시하죠. 선조는 별로 하기
싫었지만 돈도 주고 많이 지원해준 명나라
심기를 거스를 수 없었기에 동대문 밖에
관왕묘를 세웠으며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동관왕묘입니다.
아무튼 둘째 동생(선조)는 많이 도왔으니
여한은 없는데 환생하지 못한 관우를 챙기지
못한게 여간 아쉬웠는지 군주가 있는 예전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관우 신앙을 국가에서
대대적으로 장려했습니다. 아무튼 평상시
낭비와 사치가 심했던 만력제는 임진왜란때
조선을 돕느라 국가 재정이 파탄내서 향후
명나라 멸망의 원흉이됩니다.
그 외에도 많은 피해자들이 있습니다.
트위터에서 여우님이 정리하였으니
재미삼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관우에 대한 말들
"관우와 장비는 홀로 능히 1만명의 병사를
상대할 수 있는 장수" 정욱
"장비와 관우는 모두 만인지적으로 유비를
위해 사력을 다해 싸웁니다." 곽가
"관우와 장비는 곰과 호랑이 같은 장수로
이 두사람을 저 같은 사람이 지휘하여 싸운
다면 대사를 안정시킬 수 있을것 입니다."
주유
"관우는 실로 곰과 범같은 장수인데 어찌
미리 계획을 정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몽
"관공, 어찌하여 목만 오셨오?"
(관우 사후 수급을 받은 조조가)
조조
"관우와 장비는 삼군을 뒤덮을 만한 용맹을
지녔습니다. 촉나라는 작은 나라일 뿐이며
명장으로는 오직 관우만 있었을 뿐입니다."
유엽
"자부심이 매우 강한 성격으로 다른 사람
위에 서는 걸 좋아한다." 강표전
"관우는 자기의 용기에 기대 다른 사람을
능멸한다. 시작하자마자 큰 공을 세워
교만해지고, 의지는 안일해졌으며 북진
만을 힘쓰고 있으니 우리에겐 경계의
마음도 두지 않고 있습니다." 육손전
"관우는 병졸들은 잘 대해주었지만 사대부
에곈 오만했고, 장비는 군자는 경애했지만
소인은 돌보지 않았다." 장비전
"의가 아닌 것은 취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
관우
"(손권에게 투항을 거부하며) 목은 비록
꺠져 부서질지언정 그 하얀 빛은 잃으려
하지 않으며 대나무는 불에 탈지언정 그
곧음을 잃으려 하지 않는다."
관우
"술이 식기 전에 돌아오겠소."
관우
"(손권이 사돈 맺자고 하자) 호랑이 새끼를
어찌 개의 새끼한테 줄 수 있겠느냐?"
관우
"(황충이 후장군이 되자) 대장부는 평생
노병과 같은 대열에 있지 않는다!" 관우
(번성 전투 후 평상시처럼 서황과 대화도중)
서황: 자 지금 관우의 목을 가져오는 자에게
큰 상을 내릴 것이다.
관우: 아니 대형 이게 무슨일이오?
서황: 이건 나라의 일이오.
관우
(번성 포위 후 손권이 원군을 보내지않자)
"오소리 새끼가 감히 이렇게 구는구나!
번성이 함락되면 내가 니놈들을 멸하지
못하겠느냐?"
관우
※ 참고로 손권이 먼저 돕는다고 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군량미가 없어서 지가
먼저 오나라 군량고 서리함.
마치며
관우를 알면 알수록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입니다. 죽음이 눈앞에 와 있는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항상 유비를
든든히 지키는 방패였습니다. 전장을 가로
지르며 적군의 총대장을 죽이는 용맹함.
조조 역시 탐을낼 정도로 대단했던 통솔력
이야 말로 왜 만인지적인지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관우를 알수록
저는 영웅전설 시리즈의 끝판왕 카시우스
브라이트가 생각이납니다.
1:1은 물론 군에 대한 통솔력과 용감함
까지 겸비한 전장의 지휘관이죠. 하지만
너무 자기 자신이 뛰어나다보니 교만과
자존심이 선을 넘었고 결국 이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황제의 동생이라 할 지라도 엄연히
다른 나라 황제한테 오소리 새끼, 개 새끼
라고 불러 외교 관계를 불편하게 하질
않나 전쟁하는데 군량미 없다고
식량 창고를 털지 않나 그리고 촉한
내에서 이런 저런일들로 사소하게
삐지는 걸보면 확실하게 신앙으로
자리매김한 것에 비하면 과대평가
된 사람은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이런
면면 들이 있었던 것이고 혈육이 낭자한
전쟁 속에서도 조조와 서황 등 적국
의 장수들과 인의를 다지는 것을 보면
정말 중국이 좋아할 만한 인간성을
지닌 사람임은 틀림 없는 것 같습니다.
※ 본 게시물은 핸드폰 해상도에
맞추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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