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릭 지터 (Derek Jeter)
출생 1974년 6월 26일 (미국)
신체 191cm 88kg
소속팀 뉴욕 양키스 (유격수)
데뷔 1995년 뉴욕 양키스
올스타전 출전 14회 (올스타 MVP 1회)
아메리칸리그 실버슬러거 5회
아메리칸리그 골든글러브 5회
아메리칸리그 신인왕 (1996)
월드 시리즈 우승 5회
월드 시리즈 MVP 1회
행크아론 상 2회 (2006, 2009)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 1회 (2009)
King of Newyork
'미스터 노벰버', '뉴욕의 왕', '혼혈의 천사'
'클러치 캡틴', '코어 4' 이 단어 모두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유격수 데릭 지터를
자칭하는 별명입니다.
뉴욕 양키스의 마지막 한자리수 백넘버
(2번)를 사용한 선수이자 모든 프로생활
을 핀 스트라이프와 함께한 원 클럽 맨,
프렌차이즈 스타이자 마지막 영구 결번.
지터는 양키즈 역사상 가장 많은 경기
출전, 안타, 2루타, 도루, 출루, 타석,
타수를 기록한 레코드 리더로써 양키스
의 코어이자 마지막 전성기를 함께한
양키스의 주장입니다.
비록 정규시즌 MVP는 없지만 꾸준한
성적과 화려한 역동작 송구, 천재적인
야구 센스와 화려한 여성편력을 갖는
전설적인 선수로서 고교시절에 이미
5할대의 타율, 6할대의 출루율, 8할대
장타율을 기록하며 리그를 초토화
시켜버렸죠.
당시 1번 드래프트 픽을 지니고 있던
휴스턴의 스타우터 헬 뉴하우저는
지터를 크게 평가하였지만 스몰마켓인
휴스턴은 이 대형 유망주를 감당할 수
없었기에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데릭
지터는 결국 1992년 1라운드 6번의
뉴욕 양키스 픽이라는 운명적인 드래
프트 계약을 맺게 됩니다.
1992년 드래프트 주요 선수
1. 필 네빈 (휴스턴 애스트로스)
6. 데릭 지터 (뉴욕 양키스)
35. 자니 데이먼 (켄자스시티 로얄스)
58. 제이슨 지암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1006. 라울 이바네즈 (시애틀 매리너스)
제가 본격적으로 MLB를 보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까지 MLB를 책임진
베테랑들, 약쟁이들도 눈에 띄지만
무엇보다 1992년의 스포트라이트는
데릭지터의 등장이죠.
의심을 확신으로
1992년 화려한 고교시절을 뒤로하고
MLB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명문
구단에 입단하여 4년간의 마이너리그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사실 지터
입단 후 양키스의 유격수 자리엔 인상
깊은 선수가 없어 구단 입장에서는
지터에게 기대를 걸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지터는 높아진 리그 수준과
부담감 때문이었는지 지금 모습 답지
않게 잦은 에러와 2할 타율을 겨우
유지할 정도로 리그에 적응하지 못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감독은 지터를 배려하기위해 출전
명단에서 제외하였습니다.
당시 감독이 계속 출전시켰다면 2할
타율도 기록하지 못했을거란 주장이
있을 정도로 저조한 성적이 계속되자
지터는 자신감도 떨어지고 어린나이
에 향수병까지 겹쳐 매우 힘든 세월
을 보냈다고 합니다.
지터는 한달에 부모님과 통화료만 50만원
가량 나올 정도로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가족의 격려로 절치부심하여 93년
.295의 타율과 개선된 수비력으로 당시
유망주 순위 44위에 오르죠.
향후 코어4의 맴버가되는 동료 앤디 페티트,
호르헤 포사다도 일전엔 데릭지터의 모습을
보고 과대 평가된 선수라고 생각하였지만
이때부터 지터의 재능을 인정했다고 하죠.
1994년 지터는 결국 마이너리그를 초토화
시키고 '올해의 마이너리그 선수 상'을 수상
하고 유망주 순위 4위에 랭크됩니다. 지터는
결국 양키스의 기대대로 MLB 데뷔 수순을
밟게되고 1995년 5월 주전 유격수 토니
페르난데스의 부상으로 드디어 MLB에
데뷔합니다.
양키스의 빛과 소금
1995년 MLB에 데뷔하여 15경기 출장한뒤
양키스의 감독이었던 레전드 '조 토레'는
당해 영입했던 토니가 형편없는 실력으로
인상을 주지 못하자 1996년 주전 유격수로
지터를 기용하기로 합니다.
이 결정은 양키스의 유명한 구단주 조지
스타인브레너까지 의문을 품을 정도로
의심반 기대반 식 결정이었으나 지터는
'3할 타율 - 10홈런 - 104 득점' 등의 활약
으로 양키스 유격수로 34년만이자 당시
5번째 만장일치로 신인왕을 수상하죠.
96년 시즌 지터는 포스트 시즌에도 정규
시즌의 활약을 이어가며 풀타임 첫 시즌
에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게되죠.
이는 미스터 노맴버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우승이자 1980년대 양키스의 암흑기를
끝내고 코어4 왕조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우승이었지요.
* 참고로 뉴욕 양키스는 데릭지터가 활약
했던 1996년부터 2014년까지 16번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는 마지막 황금기를 갖게
됩니다. 1996년 이후 12시즌 연속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게되었고, 2008년에만 진출
했다면 17시즌 연속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남겼을 겁니다.
계속 준수한 기록을 이어간 지터는 98년
생애 첫 올스타전에 출전하고 3할-19홈런
-30도루라는 상위타자로는 믿기 힘든
성적으로 MVP3위에 오르는 활약했으며
포스트시즌엔 부진했지만 월드시리즈에선
별명처럼 귀신같이 부활하여 2번째 우승을
차지하지요.
99년부터는 선구안이 장착되어 타율 .349
출루율 .438 홈런 24개, War 8.0의 성적으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지요. 작년과 달리
포스트 시즌 내내 엄청난 포스를 보이며
우승하고 2000년에는 월드시리즈에서 4할
타율과 2홈런을 기록하여 월드시리즈
MVP를 획득하며 데뷔 5년차에 4번째
우승반지를 획득하게 됩니다....
2001년에는 생애 최초의 20-20을 달성
하며 정규시즌을 훌륭히 마무리하고
아메리칸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홈으로
쇄도하는 훗날 동료가 되는 오클랜드의
약쟁이 쉐리 제이슨 지암비를 아웃시킨
MLB 역사에 남을 명장면 The Filp이
등장하지요.
어떠한 수비시프트가 있다 하더라도 저
자리에 유격수가 있긴 힘들죠. 공이
날아오는 모습을 미리 파악한 희대의
명장면입니다. 이렇게 꾸준한 활약으로
지터는 2003년 양키스의 주장으로 선임
되었고, 04년엔 다시 한번 20-20을 달성
한데다 생애 첫 골든 글러브를 획득하며
30줄을 넘어 완성형 선수가 되어버리죠;;
여담으로 데릭지터는 MLB 최고의 명장면
제조기로 유명한데 세이버메트릭스로 보면
UZR이나 런 세이브가 나쁘다고 말합니다만
제가 지켜본 지터는 애초에 수비 레인지
자체가 넓지는 않아도 본인 레인지 안의
상황은 확실히 처리하는 버릴건 버리는
실리 수비를 추구하는 선수였습니다.
애초에 지터의 수비 성향 자체가 2루쪽으로
치우친 상태로 수비를 하는 스타일인데
이게 몸에 굳었는지 잘 고쳐지지 않은채로
수비력이 강화되다보니 2루 방면으로 오는
공은 수월하게 처리하고 3루 방면으로 오는
깊숙한 공은 특유의 스피드와 반사신경으로
뛰어가 잡아서 1루로 던지려다보니 지터의
트레이드 마크인 역동작 송구로 이어지죠.
암튼 04년 첫 골든 글러브 수상이후에도
09년까지 3할-2자리수 홈런&도루를 기록
하고 실버슬러거까지 수상하며 꾸준한
활약을 합니다. 정말 푸홀스의 별명인 '더
머신'이 안부러운 상황이죠. 특히 09년
지터는 2,722안타를 기록하며 레전드
'루 게릭'의 통산 안타기록을 갈아치우고
월드 시리즈에선 고질라 '마쓰이 히데키'
의 활약과 더불어 5번째 우승을 하게됩니다.
노쇠화의 시작 그리고 극복
영원할 것 같았던 데릭 지터에게도 노화가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2010년 36세가 된
데릭 지터는 풀타임 데뷔이래 최초로 2할
7푼의 타율과 3할대 장타율을 기록합니다.
당시 지터는 2,200만$라는 고액을 받는
상태여서 당시 여론의 비판도 상당했었죠.
당시 노쇠화를 직감할 수 밖에 없었던
양키즈는 지터와 재계약에서 연봉 삭감을
강요하며 마찰이 있었으나 결국 11년
연봉을 800만$나 삭감한 1,400만$로
시즌을 시작하게 되지요. 사실 나이가
37살에 이미 에이징 커브의 기미를 보인
선수가 받긴 어려운 돈입니다만 양키스는
팀 레전드에 대한 예우를 한 셈이죠.
그러나 2011년 퇴물이 될꺼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297의 타율로 시즌을 마치
게 되지요. (물론 출루율과 장타율은 회복
못함.) 이 뿐만 아니라 개인 통산 3천안타
라는 마일스톤을 갱신하며 구단을 미소
짓게 만들죠.
당시에 구단 관계자들이 지터의 3천안타를
홈에서 달성하게 하려고 출장 스케줄까지
조정했던 기억이나는데 결국 지터는 7월
무려 당대의 에이스 '데이빗 프라이스'에게
솔로 홈런으로 3천 안타를 기록하게 되지요.
지터는 이에 그치지 않고 2012년 더욱 회춘
하여 3할 타율 - 2자리수 홈런으로 커리어
로우를 기록한 2010년 이후 말년에 성적이
회복되는 요상한 성적을 기록하며 찬사를
받았죠.
2012년 맹활약으로 양키스는 지구 우승을
하고 포스트 시즌에 올라갑니다. 그러나
지터는 수비를하던 과정에서 발목 골정상을
당하게됩니다. 이때 지터는 스스로 걸을수도
없어 양키스 관계자가 부축하여 겨우 경기장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 경기는 ALCS
첫 경기였지만 전문가들부터 우리같은 일반
팬들 까지 모두 직감 했었지요.
지터가 없는 양키스는 무조건 필패한다!
성적을 뛰어넘어 데릭 지터는 말 그대로
양키스의 정신적 지주이자 중심축 그
자체인 위대한 캡틴이었기 때문입니다.
역시 모든 이들의 예상대로 양키스는
모든 이들의 예상대로 양키스는 디트
로이트에게 단 한경기도 이기지 못하고
전패 탈락하고 맙니다.
결국 양키스는 양키스는 2012년 이후
2018년까지 단 한번의 지구 우승을
하지 못했고 현재까지도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했죠. 암튼 이 부상의
여파로 지터는 2013년을 거의 날리며
재활을 해야했으며 특히 이 시기엔
코어4를 구성했던 동료들도 은퇴를
해버리죠.
지터도 2014년 시즌 개막전 본인의
은퇴를 알리고 본인의 마지막 20번째
시즌을 맞이하게 되지요. 물론 성적은
처참했지만 지터의 20년 동안의 훌륭한
커리어를 칭송하는 듯 어딜가든 존경과
환대를 받으며 모든 이들의 찬사 속에
은퇴를 하게 되지요.
대다수의 전설적인 선수들도 나이를
먹음에 따른 에이징 커브로 인해 말년엔
연봉 루팡을 하며 욕을 먹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기 마련인데 데릭 지터의
경우 2010년 슬럼프를 멋지게 극복하며
마지막까지 선수생활을 멋지게 마무리한
꾸준함의 대명사라 할 수 있겠지요.
사실 메이저리그의 유수한 역사속에서도
반짝하고 금방 져버렸던 많은 스타들이
존재 했지요. 하지만 그 속에서 지터처럼
꾸준한 선수야 말로 전설적인 선수의 자격
이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예측하시지만 데릭지터는
5번의 우승경험, 근래 최고의 흥행성과
더불어 3천안타라는 마일스톤까지 갖고
있는 그야말로 명전행 티켓을 끊어 놓고
있었죠. 2020년에 만장일치에 딱 한표
모자른 99.7%의 득표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였네요.
사실 저는 트로이 틀로위츠키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마치 노마 가르시아파라의
장타력과 데릭지터의 센스를 합쳐놓은것
같았죠. 그러나 그런 툴로위츠키도 150경기
이상 출전한 시즌이 2시즌에 불과할 정도로
커리어 내내 부상을 달고 살았고 결국 부상
을 이기지 못한채 신체 능력이 쇠퇴되어
은퇴를 하고 말았죠.
지겹게 말씀드립니다만, 그리고 여느
스포츠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이처럼
꾸준히 활약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큰 능력이라 생각합니다.
은퇴 후 마이애미 말린스의 CEO로써
파이어 세일의 팀 전통을 이어가며 실망
스러운 행보를 이어가나고 있긴하지만....
아무튼 선수시절 내내 뉴욕양키스에 헌신
했던 양키스의 레전드이자 제시카 알바,
머라이어 캐리, 스칼렛 요한슨, 한나 데이
비스, 아드리아나 리마, 제시카 비엘 등
수많은 스타와 사귀며 모든 남자들의
우상이 되었던 데릭 지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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