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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Rock/POP] 팝의 제왕_빌리 조엘 Billy Jo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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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y Joel
이름 윌리엄 마틴 조엘 (William Martin Joel)
생년 1949년 5월 9일 (미국 뉴욕)
별명 피아노맨 (Piano man)
경력 1971년 'Cold Spring Harbor'
1979년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노래
1980년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
1991년 그래미 어워드 레전드 상
1992년 작곡가 명예의 전당 헌액
1993년 버클리 음대 음악 박사
1993년 메디슨스퀘어가든 명예의전당
1999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
2004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
2013년 케네디 센터 공로상
2018년 7월 18일 '빌리조엘 데이' 지정*

* 빌리조엘의 100번째 메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을 기리기 위해 뉴욕주에서
지정함.

순탄치 않았던 어린시절

빌리 조엘은 1949년 미국의 한 유대인 가정
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사업가이자
피아니스트로 빌리조엘은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하진 않았죠. 어머니의 권유로 어쩔수
없이 4살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했지만 빌리
조엘이 진짜 사랑했던 것은 복싱이었습니다.
아마추어 복서로 22승을 거둔 유망한 선수
였지만 시합도중 코가 부러진 후 복싱선수
에 대한 꿈도 접어야 했지요.

빌리 조엘은 결국 다시 학업에 열중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때부터 '엘비스 프레슬리'
를 듣기 시작하였고, 특히 비틀 마니아라면
알수 밖에 없는 그 공연! 미국 '에드 설리먼
쇼'에서 펼친 비틀즈의 공연을 보고 빌리
조엘의 인생은 180도로 바뀌게 됩니다.
바로 이때부터 빌리 조엘은 뮤지션에 대한
꿈을 꾸게 된 것이죠.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아버지는
이혼하고 다시 유럽으로 떠나버렸고 고교생
이된 빌리 조엘은 가족 부양을 위해 일을
해야했습니다. 결국 하교 후에 빌리 조엘은
피아노 바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돈을 벌었
고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결석이 잦아지자
결국 우수한 성적에도 출석현황이 좋지 못해
고교 졸업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23살의 빌리 조엘.... 원래 노안이었구나...


하지만 빌리 조엘은 아랑곳 하지 않고 음악
활동을 이어나갔으며 1967년에 록 밴드
'Hassles'에 가입하였습니다. 10대의 패기로
가득한 빌리 조엘은 2집 앨범까지 호기롭게
발매하였으나 상업적으로 완전한 실패를
경험하게 되고 걸국 헤슬스의 드러머 '존
스몰'과 함께 듀오 '아틸라'를 결성합니다.

이때 빌리 조엘은 친구이자 같은 밴드 맴버
인 존 스몰의 아내 '엘리자베스'와 불륜행각
을 벌이는 막장짓을 벌이기 시작하고 결국
발각이되어버리고 맙니다. 빌리 조엘은 뒤
늦은 죄책감에 2차례나 자살 시도를 하였
으나 존 스몰의 구조로 생명을 구할 수 있었
습니다. 이후 빌리 조엘은 정신병원에도
입원하는 등 멘탈도 붕괴되어 결국 아틸라는
해체되고 엘리자베스도 존 스몰과 이혼하고
빌리 조엘과도 인연을 끊고 말지요.

이후 빌리 조엘은 패밀리 프로덕션 레이블
과 계약을 하고 1집 'Cold Spring Harbor'
를 발매합니다.

1. She's Got a Way (1971)

빌리 조엘의 솔로 데뷔 앨범 'Cold Spring
Harbor'에 수록된 싱글 곡입니다. 참고로
빌리 조엘은 1집 앨범의 전곡을 작사/작곡
하였습니다. 1집에서부터 라이팅까지 완벽
한 팝의 제왕 느낌이 나네요. 참고로 이
노래는 불륜 행각을 함께한 '엘리자베스
웨버'에 관한 노래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평범한 데뷔앨범이라 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빌리 조엘의 1집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습니다. 앨범 마스터링
작업중에 턴테이블이 빨리 돌아가는 채로
녹음이 되어 연주 속도와 빌리조엘의 목소리
이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분노한 빌리 조엘은 패밀리 프로덕션
사장에게 찾아가 책임을 요구했고 사장은
앞으로 발매한 모든 곡의 저작권을 빌리
조엘에게 넘긴다는 서명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빌리 조엘의 화는 풀리지 않았고
결국 대형 레이블인 콜롬비아로 이적합니다.

빌리 조엘의 마음을 훔쳐간 불륜녀(팜므파탈이라 해야하나?) '엘리자베스 웨버'


하지만 빌리조엘은 패밀리 프로덕션과 계약
할 당시 향후 10장의 앨범을 패밀리 프로
덕션에서 발매한다는 계약 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콜롬비아에서 발매하는 9장의 앨범
수익의 4%를 패밀리 프로덕션에게 준다는
협의를 하고 이적을 하게 됩니다. (패밀리
프로덕션 아티립 사장 선구안 최소 조이
보토, 추신수 급)

불륜과 자살시도, 데뷔 앨범의 어이없는
실패, 불리한 계약 문제 등의 갖가지 문제에
직면한 빌리 조엘의 23살은 정말 암흑 그
자체였습니다. 참고로 링크된 영상은 빌리
조엘의 1집에 수록된 녹음본이 아닙니다.
1981년 라이브 앨범 'Songs in the Attic'에
수록된 녹음본으로 이 곡은 뒤늦게 1982년
빌보드 싱글 차트 23위에 오르죠.

팝의 정상으로 질주하는 성장기

2. Piano Man (1973)

콜롬비아로 이적한 빌리 조엘은 이후 연락이
닿은 '엘리자베스 웨버'와 결혼한 뒤 절치
부심하여 1973년 지금의 빌리조엘을 있게한
앨범이자 빌리 조엘의 첫번째 히트곡이 담긴
전설의 앨범 'Piano Man'을 발매합니다! 이
노래는 빌리 조엘의 실화를 그대로 담은
진정성 있는 노래로 유명합니다.

빌리 조엘은 1집의 실패로 결국 1972년부터
2집이 발매되기 전인 1973년까지 LA의 바
에서 피아노를 치는 일을 학창시절에 이어
또 하게되었는데요. 빌리 조엘은 이때의
경험을 노래에 녹여버리는데요. 노래에 등
장한 친구 바텐더 '존'은 실제 빌리 조엘이
일했던 바에서 근무했던 실존 인물이고
일이 바빠 결혼하지 못한 부동산 중개사
'폴'역시 실존하는 손님이었죠.

이 곡은 바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피아노
맨이었던 빌리조엘의 관점에서 만들어졌고
빌리 조엘의 손님과 친구들의 꿈은 결국
이루어 지지 않았지만 빌리조엘의 연주로
잠시 인생을 잊도록 도와준 피아노맨은
빌보드 싱글차트 25위에 오르며 그를 스타
로 만들었습니다.

이때부터 팝의 제왕 빌리조엘의 별명은
'피아노 맨'이 되었고 이 노래 또한 시그
니쳐가 되었죠. 이 노래는 롤링스톤 선정
역대 가장 위대한 노래 500선에서 421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여담으로 엘튼 존과
합동 공연때는 '로켓 맨과 피아노 맨이
만나다.'라는 전설적인 슬로건이 걸리기도
했지요.

이 노래는 발매 당시 빌보드 싱글차트 25위
에 그쳤지만 향후 발매되는 커리어 최고의
명반 '더 스트레인져'가 발매된 직후 다시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으며... 더이상의
설명은 생략해도 되겠죠?

3. Your're My Home (1973)

빌리 조엘의 2집 '피아노 맨'에 수록된 또
다른 명곡입니다. 이곡은 빌리 조엘의 아내
'엘리자베스 웨버'와 결혼한 직후 1집의
실패로 돈이 궁하여 발렌타인 데이 선물을
해줄 수 없게되자 빌리조엘이 엘리자베스
웨버의 발렌타인 데이 선물로 만들어 준
노래입니다.

당시 엘리자베스 웨버는 빌리조엘의 비즈
니스 관리자로, 엘리자베스 웨버의 오빠
프랭크 웨버는 빌리 조엘의 매니저로 일하
면서 물심양면으로 빌리 조엘을 도왔....는줄
알았지만 빌리 조엘은 향후 프랭크 웨버
에게 수백만 달러를 사기 당해 법정 분쟁을
겪었습니다.

아무튼 피아노 맨의 인기에 힘입어 빌리
조엘의 2집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도 27위에 오르며 음악적 독립에 완벽히
성공하게 됩니다.

4. Say Goodbye to Hollywood (1976)

2집 앨범이 대박나고 1년 뒤 빌리 조엘은
물 들어올떄 열심히 노를 젓기 위해 3집
앨범'Streetlife Serenade'를 발매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3집앨범을 그리 안
좋아해서 패스 했습니다. 하지만 상업적
으로는 빌보드 앨범차트 35위에 오르고
100만장을 판매하며 성공했지요.

이 노래는 1976년 발매된 빌리 조엘의
4번째 앨범 'Turnstiles'에 수록된 리드
싱글 곡입니다. 이번 앨범 역시 수록된
모든 곡을 빌리조엘이 직접 만들었지요.
이 곡은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17위
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복귀를 알리게
됩니다.

5. New York State of Mind (1976)

피아노 맨과 함께 빌리 조엘 커리어 초반
최고의 명곡이라 생각하는 곡입니다. 제가
콜롬비아한테 굉장히 짜증나는게 도대체 왜
이 명곡을 싱글로 발매안하고 앨범안에만
남겨뒀나요? 4집 앨범에서 'Say goodbye
to Hollywood' 후속 싱글로 발매된 'James'
보다 훨씬 훨씬 좋은데....

아무튼 이 곡은 빌리 조엘 팬들에게 절대
빠질 수 없는 필청곡 그 자체입니다. 비록
싱글 발매는 되지 않았지만 빌리 조엘의
콘서트 셋 리스트에 절대 빠지지 않는 곡
이기도 하지요. 노래 제목 자체가 뉴욕의
마인드를 상징하기 때문에 911테러 추모
공연에서도 이 노래를 불러 유족의 마음
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했었지요.

사실 이전까지의 빌리조엘의 노래는 록
에 가까운 팝이었는데 째즈에 가까운 노래
도 가리지 않는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과
훌륭한 보컬 능력이 돋보이는 곡입니다.
참고로 이 앨범은 100만장을 판매하며
플레티넘 앨범 달성에 성공하긴 했지만
발매 당시 빌보드 앨범차트에서는 122위
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팝의 정점으로 등극하다.

6. Just the Way You Are (1977)

실망적인 차트 성적을 기록한 후 1년 뒤인
1977년 빌리 조엘은 대중음악에 한 휙을
그은 최고의 명반 'The Stranger'를 발매
합니다. 4집 앨범이 실패로 끝나자 빌리
조엘의 레이블이었던 콜롬비아는 5징 앨범
성적이 좋지 못하면 빌리 조엘을 방출하려
하였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빌리 조엘
은 먼저 최고의 프로듀서를 구해야 했습니다.

빌리 조엘은 자신이 아는 최고의 밴드인
비틀즈의 프로듀서인 조지 마틴과 미팅을
시도했습니다. 그는 빌리 조엘 자체는 좋게
보았지만 빌리 조엘의 세션 맴버를 바꾸고
싶어했고 빌리 조엘이 이를 거부 하면서 또
다른 팝의 레전드인 폴 사이먼의 프로듀싱
을 맡은 필 라몬과 함께 5집 앨범을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발매한 5집앨범. 타고난 천재가 노력
으로 각성하게되면 어떤 결과를 나타내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죠. 이 곡은 5집 앨범 중
2번째 싱글로 발매된 곡으로서 뭐 이 곡도
당연히 빌리 조엘이 단독으로 만든 곡이
에요. 이 곡은 빌리 조엘이 꿈을 꾸던 중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하죠.

이 노래는 빌리 조엘이 아내 엘리자베스를
위해 만든 노래입니다. 때문에 1982년 엘리
자베스 웨버와 이혼한 후 콘서트에서 빌리
조엘이 왠만하면 부르지 않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호주 싱글차트 6위, 아일랜드
싱글 차트 7위,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3위에
오르며 빌리 조엘 커리어 상 첫 골드 싱글
(50만장 이상 판매)이 되었으며 1979년 열린
제21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노래와
올해의 레코드에 선정되며 메인상을 수상
하게 됩니다.

7. The Stranger (1977)

빌리 조엘의 5집 앨범과 동일한 제목의
싱글곡으로 'Just the Way You Are'에
이어 3번째 싱글로 발매된 곡입니다. 이
노래 역시 빌리 조엘이 단독으로 만든
노래로 이방인이라는 제목과 100% 부합
하는 초반 쓸쓸한 인트로부터 환상적인
반전 전개까지 뛰어난 명곡입니다.

참고로 이 곡은 후속 싱글임에도 불구
하고 일본 오리콘 차트에서 흥행하며
오리콘 싱글 차트 2위에 랭크되었죠.
이처럼 멜로디가 너무 좋다보니 스눕독
같은 래퍼들이 힙합에서 많이 샘플링
하여 사용하기도 합니다.
(미국 힙합에서 명곡에 대한 샘플링은
그만큼 자주 일어나는 편)

8. Only The Good Die Young (1977)

빌리 조엘의 5집 앨범 'The Stranger'의
3번째 싱글 'The Stranger'에 이은 4번째
싱글로 발매된 곡입니다. 이곡은 가톨릭
교회에 다니는 소녀와 성관계를 결심한
청년의 관점에서 쓰여진 로큰롤입니다.
때문에 당시에 큰 이슈가 있었다고 하죠.

아무튼 가사보다도 이 노래가 대중음악에
큰 영향을 끼친 이유는 영국에 사는 어떤
게이 아저씨(엘튼존)와 함께 피아노를 락의
메인 악기로 사용하며 당시 밴드의 기본
틀을 깨버린 뮤지션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지난 시간 소개한 벤 폴즈 역시 빌리
조엘에게 큰 영감을 받아 기타 없이 피아노
를 중심으로 얼터널티브 록 앨범을 만들기도
했었지요. 이런 명곡들로 가득찬 빌리조엘의
5집 'The Stranger'는 미국 빌보드 앨범차트
에서 2위에 오르고 미국에서만 천만 장을
판매하는 다이아몬드 앨범을 기록하며 상업
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대성공하게 됩니다.

참고로 이 곡은 팝계 최고의 퍼포먼서 중
한명인 빌리 조엘에게 시그니처인 곡 중
하나입니다. 제가 산 DVD에는 피아노 위를
굴러다니고 별 지X을 하며 부르는데 이게
눈쌀이 찌푸려지기 보다는 너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퍼포먼스같아요.

그 영상을 구하지는 못했지만 라이브 영상
을 유튜브에서 구했으니 글 하단에 링크
삽입해두도록 하겠습니다.

[rock / pop] 우리 시대 최고의 올라운더_벤 폴즈 Ben Folds

Ben Folds 이름 벤자민 스콧 폴드 (Benjamin Scott Folds) 출생 1966년 9월 12일 (미국) 경력 1993년 '벤폴즈 파이브' 결성  1995년 'Ben Folds Five'  2000년 벤폴즈 파이브 해체  2001년 솔로 활동 시작  2..

normalmister.tistory.com

▲ 빌리 조엘에게 큰 영감을 받은 후배 뮤지션 '벤 폴즈'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9. My Life (1978)

상업적, 음악적으로 대성공을 거둔 5집 앨범
발매 1년 후 빌리 조엘은 6집 앨범 '52nd
Street'를 발매합니다. 이 앨범 역시 5집 앨범
의 성공을 이어가는 환상적인 앨범으로 출시
되었습니다. 이 곡은 6집 앨범의 리드 싱글
로 발매된 곡입니다.

당연히 이 앨범의 모든 수록곡은 팝 역사
에서 손꼽히는 싱어송라이터인 빌리 조엘이
전부 단독으로 작곡했지요. 이 곡은 빌보드
싱글 차트 3위에 오르며 지속적인 성공을
견인했습니다. 사람 기분 좋게 만드는 빌리
조엘 식 팝의 연장선에 있는 노래입니다.

10. Honesty (1978)

빌리 조엘의 6집 앨범 마지막 싱글로 발매
된 곡으로 역시 빌리 조엘이 작곡한 명곡
입니다. 뭐 이 노래도 빌리 조엘 필청곡에
절대 빠질 수 없는 곡이죠? 이 노래는 올
뮤직에서 빌리 조엘 커리어상 최고의 노래
라고 했을 정도로 평론가들에게도 극찬을
받았으며 후속싱글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싱글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으며,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도 24위를 기록했습니다.

훗날 비욘세가 커버하여 부르기도 했지요.
빌리 조엘의 6집 앨범은 전세계적으로 6백
만 장 이상 팔리며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는 물론 빌리 조엘 커리어 상 최초로 미국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등극하게 되는 앨범
이 됩니다.

그리고 이 앨범은 1980년 열린 22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베스트 락 보컬 퍼포먼스(남자)'
부문을 수상하고 무려 '올해의 앨범'상 까지
수상하며 빌리 조엘은 메인상 3개를 모두
휩쓸게되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합니다.

11. You May Be Right(1980)

1980년 발매된 빌리 조엘의 7집 앨범
'Glass Houses'에 수록된 2번째 싱글 곡
입니다. 7집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도 빌리
조엘이 단독으로 작곡하였지요. 이 곡은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7위에 오르며 명성
에 걸맞는 차트 성적을 보여주었습니다.

확실히 빌리 조엘의 7집은 기존 앨범들
보다는 로큰롤에 기조한 앨범인게 타이
틀 곡만봐도 느껴지지요?

12. It's Still Rock and Roll to Me (1980)

빌리 조엘의 7집에 수록된 명곡으로 'You
May Be Right'에 이은 3번째 싱글로 발매
된 곡입니다. 이곡도 빌리조엘 필청곡에
빠지면 섭한 곡으로 빌리조엘을 대표하는
최고의 로큰롤 송입니다. 더구나 이 싱글
은 2백만 장을 판매했고 빌리 조엘 커리어
상 최초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기록
하게 해준 곡이기도 합니다.

빌리 조엘의 7집 앨범은 캐나다, 아이슬
란드, 빌보드 차트에서 1위에 오르며 전
세계적으로 800만 장 이상 팔아치우는
베스트 셀러가 되었으며 1980년에 이어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고의 록 보컬 퍼포
먼스(남자)' 부문을 수상하였습니다.
(올해의 앨범은 2년 연속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결국 수상은 하지 못함)

13. Goodnight Saigon (1982)

1982년 발매한 빌리조엘의 8집 앨범 'The
Nylon Curtain'의 마지막 싱글곡입니다.
여느 앨범과 마찬가지로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은 빌리 조엘이 작곡하였습니다.
이 노래는 빌리 조엘이 월남전을 생각
하고 만든 노래로 패리스 섬에서의 미
해벙대 상황을 묘사하였다고 합니다.

노래는 개인이이겨내는 것이 아닌 미
해병대의 동료애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뮤직 비디오에서 군인들은 플레이 보이
잡지를 보거나, 도어스 음악을 듣거나,
예수님께 기도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두려움에 저항하고
있지요.

이 노래는 후속 싱글로 빌보드 싱글차트
56위에 오르는데 그쳤지만 미국 최고의
컨츄리 가수 '가스 브룩스'는 이 노래를
빌리 조엘 노래중 가장 좋아하여 커버
하기도 했었을 정도로 전문가 집단에겐
인정 받았지요.

빌리 조엘의 8집 앨범은 빌리 조엘 스스
로도 최고의 결과물이라 칭할 정도로
큰 노력을 쏟아부은 앨범입니다만 차트
성적은 빌보드 앨범 차트 7위, 판매량
200만 장으로 5~7집 대비 많이 감소
하였습니다.

참고로 1983년 그래미 어워드에서도 6집,
7집에 이어 3번 연속으로 '올해의 앨범'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는 명장면을 연출
했지만 괴물같은 연주력을 보여주는 모
밴드(TOTO)에 밀려 수상은 실패합니다.

근데 진짜 실베스타 스텔론 닮지 않았나요?
이 곡이 람보에 쓰였으면 레전드 였을텐데 ㅋ

14. Tell Her About It (1983)

1983년 발매한 빌리조엘의 9집 'An Inno
cent Man'의 리드싱글로 발매된 곡으로
역시 빌리 조엘이 작곡한 곡입니다. 이
앨범은 빌리 조엘이 미국의 유명인들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요.
이 곡의 경우 모타운. 그 중에서도 전설
적인 디바 그룹이었던 'The Supremes'
에게 바치는 곡입니다.

이 싱글은 50만장 이상 팔아치우고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합니다.

The Supremes

15. Uptown Girl (1983)

빌리 조엘의 9집 앨범 2번째 싱글로 발매된
곡으로 빌리 조엘이 단독으로 작곡한 명곡
입니다. 이 곡 또한 빌리 조엘의 시그니처
중 한 곡이기도 하죠. 이 노래는 부유한
업타운 소녀를 구하기 위한 가난한 노동자
계급의 다운타운 남자를 그린 노래입니다.

당시 빌리조엘은 그렇게 좋아했던 엘리자
베스와 이혼하고 엘리라는 여자와 사귀고
있었는데요. 뮤직 비디오에 등장한 크리스티
를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합니다.
빌리 조엘은 당시 큰 인기를 끌던 슈퍼모델
크리스티와 사랑에 빠지게 되어 1985년
두번째 결혼을 하게 되지요.

아무튼 이 곡은 후속 싱글임에도 빌보드
싱글차트 2위에 올랐고 그동안 빌리 조엘
에게 차가웠던 UK차트에도 1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앨범 차트 기록 역시
좋았는데요. UK차트 2위, 빌보드 차트 4위,
오리콘 차트 3위를 기록하며 비록 1위는
하지 못했지만 메인 시장을 점령해 버렸죠.

전 세계적으로도 800만장 이상 팔아치우며
상업적으로 부진했던 전작의 성적을 말끔히
지워버립니다. (전작도 사실 일반적인 시각
으로 보면 대박나긴한건데 매번 천만 장
가까이 팔아치우는 사람이다보니...)

여담으로 6,7,8집에 이어 4번 연속으로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 부문에 노미
네이트 되었지만 수상하지는 못했습니다.
또한 20년 뒤 이 곡은 영국 보이 그룹인
'웨스트라이프'가 커버하여 대박났었죠.
그때 학원끝나면 애들이 CD 플레이어랑
카세트 테이프로 많이 들었는데...

16. A Matter of Trust (1986)

9집 앨범 발매 후 빌리 조엘은 1985년
그동안의 명곡을 한데 모은 베스트 앨범
을 발매합니다. 이 앨범은 1,100만 장을
팔아치우며, 핑크 플로이드, 레드 제플린
의 뒤를 이어 역대 6번째로 많이 팔린
단일 앨범으로 기록됩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1986년 빌리 조엘은
10집 앨범 'The Bridge'를 발매합니다.
이 곡은 10집 앨범의 2번째 싱글로 발매
된 곡으로 마찬가지로 빌리조엘이 단독
으로 작곡했습니다. 10집에서는 최초로
빌리 조엘이 남의 도움을 받아 작곡한 곡
이 등장하는데요. 수록곡 중 한 곡인 'Code
of Silence'의 경우 레전드 디바인 '신디
로퍼'의 도움을 받아 공동 작곡했다고하네요.

이 곡은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에 오르며
성공적인 차트 성적을 보여주지요. 뮤직
비디오에서는 당시 아내였던 크리스티가 딸
알렉사를 안고있는 모습도 보이며 빌리
조엘이 존경한 대중음악의 신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와 링고스타가 짧게 등장해서
화재가 되기도 했지요.

17. Baby Grand (1986) [Ray Charles]

빌리 조엘의 10집에 수록된 마지막 싱글 곡
으로 빌리 조엘이 작곡한 곡입니다. 그리고
이 곡은 무려 소울의 아버지 '레이 챁스'와
함께한 곡인데요. 두 거장의 만남은 그 자체
로도 어마어마한 일인데 둘다 또 그랜드
피아노를 치는 공동점이 있는데다가 빌리
조엘은 딸의 이름도 레이찰스를 따서 알렉사
레이로 지은 공통점이 있었죠.

레이 찰스는 빌리 조엘의 또다른 우상으로
레이 찰스가 없었다면 자신을 결코 스타가
될 수 없었을거라 말하기도 했지요. 이 노래
는 평론가들에게는 찬사를 받긴 했지만
후속싱글이어서인지 빌보드 싱글 차트
75위를 기록했지요.

앨범 성적은 빌보드 차트 7위에 올랐고
200만 장을 팔아치우는 등 여전한 흥행
파워를 자랑하긴 했지만 빌리 조엘의 이름
값에 걸맞지 않는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18. We Didn't Start the Fire (1989)

1989년 발매된 빌리 조엘의 11집 'Storm
Front'에 수록된 리드 싱글입니다. 역시나
이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도 빌리 조엘이
단독으로 작곡했지요. 이 곡은 1940년대
부부가 가정생활을 시작하고 손자가 생기
고 사망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는데요.
빌리 조엘이 1949년 생이니 부모님 세대
가 저무는 것에 대한 소회를 보여준 노래
라고 생각이 드네요.

이 노래는 빌리 조엘의 아버지 세대가 겪은
중국 내전, TV의 보급, 한국 전쟁, 소아마비
백신 개발,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제임스
딘, 아인슈타인, 조 디마지오, 엘비스 프레
슬리, 에이즈, 천안문 사건, 워터게이트 등
수많은 사건을 다루죠. 이 신박했던 싱글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빌리
조엘 커리어 역사상 3번째 싱글 1위 곡이
되었습니다.

19. Leningrad (1989)

이 노래 역시 11집에 수록된 2번째 싱글 곡
입니다. 이 노래는 빌리 조엘이 소련을 여행
할 당시 만나 러시아 광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삶과 비교하며
소련과 미국에서의 문화적 차이점을 노래
합니다.

그 광대는 세계 2차대전에서 레닌그라드
포위 공격에 아버지를 잃었고 소련 군대에
입대하여 고통을 이기기 위해 보드카를 마셨
으며 그 후 서커스 광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광대의 이름은 빅터 라지노프로 빅터와
빌리 조엘의 우정은 이후 수십년간 지속
되었습니다.

아마도 냉전이 지속되었다면 저 둘은 결코
친구로 남을 수 없었겠지요? 이를 의식했는
지 빌리조엘은 노래에 마지막에 "We never
knew what friends we had, until we came
to Leningrad.'라는 문구를 남겼죠.

빌리 조엘의 11집은 전 세계적으로 500만장
이상 팔리며 빌보드 앨범차트에서도 1위에
등극하는등 왕좌 탈환에도 성공합니다.

20. All About Soul (1993)

1993년 빌리조엘은 12집 'River of
Dreams'을 발매합니다. 이 앨범도 모든
곡을 빌리 조엘이 전부 단독으로 작곡
하였습니다. 이 곡은 빌리 조엘 12집에
수록된 2번째 싱글 곡으로 브루스 스프
링스틴의 느낌이 나는 빌리 조엘의
로큰롤 송입니다.

이 노래는 정말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앨범은 이 노래를 제외한 곡들은
약간 난잡한 느낌의 곡들이 많아 그렇게
좋아하는 앨범은 아닙니다. 뭐 그럼에도
미국 빌보드 앨범차트에서 1위를 기록
하고 전 세계적으로 천만장 이상을
팔아치우며 대성공하긴 했지만요.

참고로 이 앨범도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BB킹을
존경하는 서세원 닮은 영국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에릭 클랩튼)에 의해 수상은
하지 못하고 콩라인을 구축하였습니다.

21. Air (2001)

12집 이후 빌리 조엘은 정규 앨범 발매를
하지 않고 라이브 앨범과 베스트 앨범만을
번갈아 발매하며 말년 뮤지션과 같은 행보
를 보이다 2001년 돌연 스튜디오 앨범을
발매하는데요.

바로 빌리 조엘의 오랜 친구인 영국인
주형기 님 (한국계)과 함께 만든 앨범으로
기존의 팝 앨범이 아닌 전 곡이 피아노 연주
로 이루어진 클래식 앨범입니다. 이 앨범도
빌리 조엘의 이름 값이 작용했는지 클래식
앨범임에도 빌보드 앨범 차트 83위 올랐죠.

마치며

2001년 앨범을 발매하긴했지만 빌리 조엘은
사실 1993년 12집 앨범을 마지막으로 그의
팝 음악 커리어를 종결지었다고 보시는게
맞을 듯 합니다. 현재도 작곡 활동을 진행
하고 있긴하나 기존의 팝 스타일 곡은 아닌
데다 발매할 용의도 없다고 하지요.

하지만 빌리 조엘은 2019년까지도 꾸준히
공연을 이어가며 팬들과 소통을 하고 있긴
니다. 물론 2020년 부터는 펜데믹으로 인해
공연은 무기한 연기된 상황이지만요. 암튼
이 할배는 툭하면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콘서트 하는 레전드 오브 레전드라서.....
(사실 티켓 파워가 없으면 대관 해주지도
않음) 2018년에는 메디슨 스퀘어 가든
100번째 공연을 기념으로 빌리 조엘을
위한 날을 만들어 주기도 했지요.

아무튼 빌리조엘은 천재적인 싱어송라이팅
능력, 훌륭한 피아니스트 그리고 보컬로도
귀결될 수 있겠지만 팝 음악에서의 빌리
조엘의 업적은 레전드 그 자체입니다.
비틀즈로 종결되는 1960년대를 지나 19
70년대는 하드록과 디스코가 양분한 시대
볼 수 있겠는데요. 1970년대 최전성기를
보낸 빌리 조엘은 락이 득세하던 시대에
팝의 왕좌 계보를 비틀즈에 이어 80년대
말 마이클 잭슨에 전달하기까지 힘겨웠던
록의 춘추전국 시대를 이겨낸 팝의 산증인
이라 할 수 있겠죠.

요즘엔 신보 활동을 하지 않아서 아쉽지만
시그니처 곡의 가사처럼 할매 할배들에게
추억을 연주해주는 피아노 맨으로 4번째
사모님이랑 오래오래 행복하셨음 좋겠네요.

추가 영상. Only The Good Die Young (Live)

퍼포먼스도 팝계 최고인 '빌리 조엘 할배'


※ 본 게시물은 핸드폰 해상도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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